흰색의 순수와 침묵

조재은 수필가, 수필읽기 (7)

이지우 기자 | 기사입력 2020/08/01 [18:34]

흰색의 순수와 침묵

조재은 수필가, 수필읽기 (7)

이지우 기자 | 입력 : 2020/08/01 [18:34]

                                             흰색의 순수와 침묵

 

                                                                                                     조재은 수필가


대화 속에는 침묵도 포함되어 있다. 말과 침묵은 서로 합하여 일체를 이룬다. 침묵은 대화의 결핍이 아니라, 충만이기도 하다. 대화중에 말이 끊기면 때로는 왜 침묵하고 있는지, 침묵조차 설명하려고 한다. 인간은 말을 통해 존재를 확인하려 하지만 존재는 설명할수록 모호해진다.


침묵은 대화의 완성이다. 
대화는 두 사람 사이에 떠도는 침묵과 오가는 시선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침묵이 없는 대화는 마침표 없는 문장과 같아 다시 이어져야 한다. 의미 없는 말들이 오가기 시작하면 사고는 희미해지고 관계는 헐거워진다. 침묵이 두려워 끊임없이 말을 쏟아내는 여자는 화장이 두꺼울수록 예쁘다는 생각을 하거나, 노출이 심할수록 아름답게 보인다고 착각을 하는 여자와 같다.


침묵은 순결하므로 침묵하는 순간 그대로 두어야 한다.
상대방 침묵을 부담스럽지 않게 생각하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란 말이 있다. 말로 표현할수록 흐려지는 감정을 여러 번 경험했다. 사랑과 슬픔으로 가슴이 꽉 차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때, 그 순수의 상태에서 들리는 소리가 있다. 침묵의 소리다.


잊을 수 없는 흰색의 영상에서 순수를 만나고 침묵과 대화한 적이 있었다.

흰 사각의 캔버스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틀도 없는 사각의 흰 캔버스 전체가 흰색인 작품을 보았다. 사방 일 미터 정도를 손으로 못 만지도록 줄로 막아 놓은 캔버스. 점 하나 없는 흰색의 공허. 근처에 있던 고갱의 화려하고 강한 색과 자코메티의 수없이 깎아 앙상한 고뇌의 조각도 사각의 흰 공간보다 충격이 작았다.


색깔들은 침묵하고 있었다.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작가의 의도를 생각하지 않고, 나는 그 흰 캔버스와 얘기를 한다.
흰빛은 점점 눈앞에서 확대되고, 머릿속이 하얗게 칠해지고 있다. 장소가 뉴욕임을 잊고 작가가 누구인가도 잊는다. 생활의 어려움도 생각나지 않는다. 무심한 흰색 속에서 한국의 많은 얼굴이 떠오른다. 졸업 앨범 속보다 더 많은 얼굴들이 찍혀 나온다. 그 흑백의 얼굴들과 사랑과 결별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한 사람씩 손을 잡는다.


달빛아래 용서와 관용의 승화된 춤을 추던 처용이 떠오른다. 하얀 달빛 아래서 흰옷을 입고 마음을 하얗게 바래면서 분노를 껴안았을 처용이 화폭에서 말을 건넨다.
현실과 과거가 만나고 있다. 모든 색을 합해 검은 색을 만들고, 그 검은 색에 의미를 부여해 하얗게 바래는 작업을 머릿속에서 하고 있다. 공허 같은 흰 색이 왜 그렇게 많은 것을 가졌는지. 그 작품 앞에 서 있는 몇 분간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고 끝없이 멀고 먼 거리감과 함께 안개가 몸을 휩싼다. 멀고 아득하다.


빈 캔버스를 “왜 그렇게 오래 보느냐”고 함께 간 사람이 말하지 않았다면, 연상 작용은 계속 되었을 것이다. 미술관을 나오며 뒤돌아보았을 때 멀리서 본 흰 사각형은 완강한 침묵으로 나를 보낸다.
한국에 돌아와 설명하기 힘든 일이 있을 때, 얘기를 해도 진실이 통하지 않을 때, 끊임없이 말을 잇는 사람을 만날 때 흰 사각의 캔버스가 떠오른다. 그 작품은 예술에 있어서 절대적 가치는 순수한 감정의 환원이고 모든 전통을 부정하고 무無에 도달하려는 말레비치(Malevitch) 작품이었나 보다.

예술과 인간에게서 침묵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이해의 길이 열린다. 흰 캔버스가 보여 주었던 침묵, 그것은 순수였다. 완전한 순수는 침묵으로밖에 표현 할 수 없기에.

 

 백지의 시 
오래 전 신춘문예 당선 소감 중에서 ‘없어진 시’라는 제목만 있고 한 줄의 내용도 없는 시에 전율했다는 글을 읽었다. 당선자의 시보다 ‘없어진 시’의 흰 공백이 마음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어떤 의도로 시인은 내용을 백지로 만들었을까. 백지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백지인 것은 - 시를 쓰기 위한 시적 모험이고, 꾸미고 깎고 붙인 시어들에 대한 반발이고, 이미 표현하기 시작할 때부터 퇴색하는 아름다움이 안타까워서이고, 꿈에 절망하고 자신에게 실망한 아픔이고 평범한 재주가 재능이 아니었음을 알기 때문이고, 뿌리와 전통 없는 사유의 가벼움에 식상하고 간직하고 있던 고유의 노래와 멜로디를 빼앗겨서이다.


백지로 밖에 표현 할 수 없었던 것은,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이다. 가끔은 완전한 제로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서이고, 격랑 이는 바다를 헤치고 도착한 곳이 무인도임을 알아서이고, 헛된 일상에 질려서이고, 수렁 같은 대인 관계에서 빠져 나올 수 없어서이고, 현실의 질곡과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고, 묵상의 끝인 자유를 찾지 못해서이고, 소외된 아픔의 상처와 소멸되어 가는 시간이 아파서이다. 


아니면,
시인의 혼이 불에 타버려 순수의 상태가 되고, 시인의 언어가 불에 녹아 침묵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조재은 수필가

 

 

 [약력]

 □ 이메일: cj7752@hanmail.net

 □ 전) 『현대수필』 주간, 편집장, 『월간문학』 편집위원, 한국펜클럽 이사
     현) 『현대수필』자문위원 『에세이포레』 편집위원
 □ 작품집 <시선과 울림>2006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도서 <하늘이 넒은 곳> <삶, 지금은 상영 중>  <에세이 모노드> 

 □ 구름카페문학상', '일신수필문학상' 수상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