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쓰기

김단혜 수필읽기(3)

이지우 기자 | 기사입력 2020/08/01 [18:23]

나의 글쓰기

김단혜 수필읽기(3)

이지우 기자 | 입력 : 2020/08/01 [18:23]

                                                    나의 글쓰기 (3)

 

                                                                                                  김단혜 수필가


글쓰기가 나를 바꾼다. 이전의 내가 아닌 다른 내가 되어야 비로소 글이 써진다.
내가 쏘옥 빠져 나가는 순간 글이 온다. 자기애가 강한 나는 쉽게 나에게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내가 나 자신으로 넘어가는 순간을 잘 포착해야 한다.

 

이 일은 아주 미세해서 자칫하면 놓칠 수 있다. 글쓰기 모드로 가기 위해 서서히 몸을 달구며 수없이 말을 걸다 보면 꼼짝도 하지 않던 무엇인가가 감지된다. 가령 벼락같은 단어를 줍는다거나 혹은 끌어안고 죽고 싶은 문장을 만나는 경우가 그렇다. 마치 한 달에 한 번 마술에 걸리는 여자처럼 몸에서 무엇인가 빠져나가는 것이다. 이 작업은 쾌락으로 오는데 늘 불안을 데리고 다닌다.

 

청탁을 받거나 써야 할 글이 있으면 나를 만날 행복감과 두려움에 젖는다. 머릿속으로 정리되었다고 무조건 써지는 것이 아니다. 발품을 팔아야 글이 써지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장소를 가거나 해서 발을 혹사해야 한다. 발바닥이 보내는 신호를 느껴야 한다. 발바닥이 나와 가까워지는 순간을 기다린다.

 

마치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의 요동처럼 발바닥에서 신호가 온다. 그렇게 시동을 걸었다고 해서 바로 글이 써지지 않는다. 때론 한 달이 되기도 하고 두 달이 넘기도 한다. 그 상태에서 시간이 길어지면 첫 생각을 놓치고 만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는 것을 포기할 수 없는 것처럼 글쓰기의 쾌락을 포기할 수 없다. 내가 존재하는지 몰랐던 어떤 것과의 연결고리를 찾는 일. 영감이라고 하는 것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가령 내리막길을 걷다 목 아래께로 내리쬐는 햇살이 뜨겁다거나 화장 솔 같은 자귀나무 꽃잎이 미세하게 흔들릴 때 온통 시간이 내게 집중되는 때가 있다.


마치 영화감독처럼 한 순간이 정지화면처럼 아슴아슴하니 떠오를 때는 눈을 감고 그 자리에서 영상 속으로 들어간다. 처음 떠오른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 또 집중해야 한다. 꿈을 꾸다 깨면 다시 그 꿈이 꾸고 싶어서 눈을 감는 경우와 비슷하다. 한 장면이 오래 기억되는 것은 아주 좋은 케이스다. 붙잡아야 한다.


변하면서 변하지 않는 나, 그 속에 글쓰기가 있다. 그런 나를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오래오래 하고 싶다.

 

 

 

 

 

   

    ▲ 김단혜 수필가


 □ <한국작가> 2010년 수필등단
 □ 야탑문학회 회장
 □ 성남문학상 수상 (2018년)
 □ 시집<괜찮아요, 당신> 책 리뷰집<들여다본다는 것에 대하여> 
 □ 수필집<빨간 사과를 베끼다> 
      vipapp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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