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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산책 4, -베른하르트 슐링크 「소녀와 도마뱀」

한상훈 문학평론가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4/02/17 [18:56]

문학산책 4, -베른하르트 슐링크 「소녀와 도마뱀」

한상훈 문학평론가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4/02/17 [18:56]

  © 포스트24


                                                문학산책 4

 

                                     -베른하르트 슐링크 「소녀와 도마뱀」

 

                                                                                                  <한상훈 문학평론가>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독일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Bernhard Schlink, 1944~)의 중편 「소녀와 도마뱀」에는 르네 달만이라는 허구적 화가가 등장한다. 이 화가가 그린 그림이 제목의 ‘소녀와 도마뱀’인 것이다. 이 그림은 이 소설의 주제를 풀어나가는데 매우 긴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 작품은 한 소년의 성장 과정을 다룬 성장소설이다. 전쟁 직후의 이야기란 점에선 전후(戰後)소설이기도 하다. 소년은 2차 대전 때 독일의 어느 도시의 법관이었던 아버지의 어떤 행동을 의심하며, 그의 정신세계를 파헤쳐 나간다. 아버지의 서재엔 특이한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 그림엔 소녀와 도마뱀이 그려져 있었다. 둘은 서로 쳐다보는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서로를 쳐다보는 것이 아니었다. 소녀는 꿈에 취한 듯이 도마뱀을 바라보고 있었고, 도마뱀은 유리알 같은 멍한 눈을 소녀에게 향하고 있었다.” 

 

그림에 대한 작가의 설명은 더 이어진다. ‘도마뱀’은 혀를 날름거리며 바위 위에서 꼼짝 않고 있었고 ‘소녀’의 모습은 비스듬히 누워있었다는 등 매우 세밀하게 묘사한다. 소년의 어머니는 그 소녀가 ‘유대인’이라고 한다. 

이 지점에서 전쟁을 일으킨 독일의 유대인에 대한 ‘죄’의 문제가 연상되고, 독일 작가의 자기 나라에 대한 반성적 태도의 글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전개되지 않는다. 

 

“어서 그 유대인 여자애나 만나보지 그래요!” 

 

어머니의 아버지에 대한 이 말을 소년은 어려서부터 자주 들었다. ‘그림’으로 인해 부부 사이의 불화가 있음을 뜻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어떠한 사연이 깔려있는 것인가. 시종 독자들은 이 점을 궁금해 하며 점차 소설속에 몰입하게 된다. 

어머니는 그 그림을 치우지 않는 것에 대해 늘 못 마땅해 한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그 그림에 대해 빈정대거나 비판하는 말을 쏘아붙일 때, 집안의 분위기는 소년이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극도의 긴장된 상태로 놓였다. 소년은 싸늘한 부모의 관계 속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바깥의 학교생활보다는 그림 속의 ‘소녀’와 은밀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것을 좋아하게 된다. 

 

소년이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교사는 그림을 말로 풀어오라는 과제를 내준다. 소년은 기쁨에 들떠서 아버지의 서재에 몰래 들어가 그 그림을 글로 묘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버지가 알고나서, 학교에 그 글을 제출하지 못하게 한다. 사람들은 그 그림이 우리가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질투가 나서 빼앗으려고 든다는 것이다. 소년은 그 그림이 그렇게 보물이냐고 묻는다. 

 

“이 그림은 아주 가치 있는 거야. 사람들이 이 그림을 훔치려고 들면 내가 막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아버지는 그 후 판사직을 그만두게 되고 집안은 갈수록 옹색해진다. 그런 상태에서 아버지는 점차 술에 중독이 되어 직장마저 잃고 만다. 

 

“소년은 학교를 다니면서 돈을 벌어 집에 보태주어야 했다.” 

 

어느 날 소년은 우연히 ‘현대예술박물관’을 찾게 되고 거기서 르네 달만의 그림이 아버지의 서재에 있는 그림 ‘소녀와 도마뱀’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소년은 아버지에게 집안이 어려운데 이렇게 값이 나가는 그림을 팔지 않는 이유가 뭐냐고 따지듯이 묻는다. 아버지는 이유는 말하지 않고 절대 팔 수 있는 그림이 아니라고 하면서 화를 내더니 나중엔 울먹이기까지 하고, 부자간의 갈등은 더욱 심해진다. 소년은 아버지의 말 못 할 ‘비밀’에 어떤 ‘죄’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막연히 생각한다. 어느덧 소년은 대학생이 되고 공부를 위해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독립해 나간다. 

 

“조그만 창문 하나와 석탄 난로가 있는 다락방이었다.” 

 

그는 ‘소녀와 도마뱀’을 그린 르네 달만이라는 화가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갖고, 그에 대한 책을 구해 읽고 불우했던 그 화가의 가정사도 알게 된다. 그가 대학 3년째 되는 해 겨울, 아버지가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오다가 비탈에 굴러 떨어졌는데, 쓰러진 채 얼어 죽게 된다.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그는 고향집에 왔는데, 어머니하고도 극도로 사이가 나빠졌다. 어머니가 오랫동안 집에 찾아오지 않은 아들을 원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탓일까.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인식은 예전보다 부드러워졌다. 아버지는 네가 법학공부를 잘하고 있는지 궁금해 했고, 찾아가 보고 싶었지만, 한 번도 네가 초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갈 용기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너희들 신세대는 과거에 우리가 그랬던 것 못지않게 잔인해. 너희들은 독선적이야. 그게 다야.”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신뢰하지 못하고 계속 의혹을 갖고 불신해왔고, 어머니는 그러한 아들을 신랄하게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 베른하르트는 어머니의 말을 통해 전쟁을 일으킨 기성세대보다 그들을 비판하고 있는 젊은 세대들이 더 이기적이라는 점을 은연중에 강조한다.

 

이 소설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는 전쟁 세대와 전후 세대 간의 화해하지 못하는 단면을 첨예하고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이 작품은 부부 간의 수평적 갈등 못지않게 부모와 자식 세대의 수직적 갈등을 매우 심각하게 그려나가고 있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아들을 보게 되었지만 별다른 모성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것은 아들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남편 서재에 있는 그림이나 가져가라고 마지막으로 통고한다. 

그는 어려서부터 관심을 가졌던 르네 달만의 ‘소녀와 도마뱀’을 가져와서, 좁은 다락방의 침대 위에다 그 그림을 걸었다. 대학 들어오자마자 사귀어왔던 여학생이 다락방의 침대 위에 걸린 그림 속의 소녀를 보곤 관심을 갖는다. 그는 여자 친구와 대화하면서 늘 그림 속의 소녀를 의식한다. 그리고 여자 친구가 자꾸 그 그림에 관심을 갖는 것이 귀찮아 숨겨 놓는다. 

 

“섹스를 하고 나서 나란히 누워 있을 때면, 그는 어서 그녀가 가주기를, 그래서 그가 다시 그림을 걸고 자신의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기만을 기다렸다.” 

 

말하자면 그에겐 현실 공간의 여자보다 어려서부터 계속 대화를 나누었던 그림 속의 ‘소녀’가 연인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결국 그 여학생은 그에게 이별을 통고한다. 그의 마음속을 알아챈 것이다.

그는 그 후에도 그림 속의 소녀와 더 내밀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또한 그는 예술사 연구소의 여자 사서를 통해 르네 달만과 그가 그린 그림에 대해 묻기도 하면서, 그녀와 가까이 지낸다. 그는 아버지가 어떤 나쁜 행위를 통해, 그 그림을 르네 달만이라는 화가에게서 빼앗은 것이 아닐까, 그런 의혹을 품는다. 그 화가와 아버지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고향의 어머니에게 가서 묻는다.

 

“아버지는 전쟁 중에 무슨 일을 하셨나요?”

 

그 말을 듣고 어머니는 무척 괴로워한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뭣 때문에 고발하거나 비난하겠어요? 저는 다만 아버지가 어떻게 르네 달만의 그림을 입수하게 되었는지 알고 싶을 뿐이예요.” 

 

어머니는 아들의 집요한 질문을 더 이상 피하지 않는다. 그 당시 아버지는 군법회의 재판관이었는데 유대인들을 도와주고 감사의 표시로 그들에게서 선물 받은 것이라고 입을 열기 시작한다. 전쟁이 끝난 뒤, 그림을 돌려주려고 해도 그 화가 부부를 찾을 수 없었고, 그 그림을 선물로 받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어 아버지가 몹시 힘들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다. 

 

“그 모든 일을 직접 봤나요? 아니면 아버지가 나중에 들려주었나요?” 

 

아들의 냉정하고 끈질긴 물음에, 어머니는 그 당시 아버지와 같이 있지 못했다는 말을 하기에 이른다. 그럼, 아버지가 한 말을 그대로 믿었던 것 아니냐고 묻는다. 아버지의 말이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대목은 매우 신랄하게 아들이 아버지의 행동을 의심하는 장면으로, 우리의 정서론 이해하기 힘들 정도다.

더구나 아들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어린 시절 ‘유대인 여자’로 인해 부모님이 싸움을 자주 했던 것을 떠올린다. 아들은 그 ‘유대인 여자’가 화가의 부인이고, 군법회의 재판관인 아버지가 그 힘을 이용해서 그녀를 협박하고, 아버지가 몸을 요구한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 그 사건을 나중에 사람들이 알게 되어, 아버지가 판사직을 잃게 된 것이 아니냐고 따진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사람들로부터 누명을 쓴 점이 있다고 말하곤, 아들의 계속되는 질문에 좀처럼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 어머니는 아버지가 남겨두었던 서류철을 아들에게 건네준다. 거기에는 아버지의 고백이 담겨 있었다.

 

“유대인들이 가지고 도망치려고 한 물건들을 불법적으로 내 것으로 만들 목적으로 내게 신고하도록 했다는 주장은 맞지 않는다. 사실 나는 유대인들의 재산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권한도, 유대인들의 재산을 보호할 의무도 없었다.”  

 

2차 대전 때 군사재판소의 판사로 있었던 아버지의 허물을 묻는 사람들의 시각에 대해 아버지는 법적으로 잘못한 것이 없다는 글이었다. 하지만 그 글을 읽고나서 아들은 아버지가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아버지의 캐릭터를 통해 작가 베른하르트는 법과 양심 사이의 경계에서 흔들렸던 인간의 욕망을 잘 드러내고 있다. 

아들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그들의 끊임없는 불화를 떠올린다. 이러한 과거가 그 화가 부부의 삶과 관계가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이 소설은 추리적 기법으로 가족 구성원의 비밀을 조금씩 풀어나간다. 아들은 어머니에게서 자기가 어린 시절부터 전혀 사랑을 받지 못한 이유에 대해 냉혹하게 질문한다. 

 

“어머니가 나를 가질 때, 아버지가 어머니를 겁탈했죠? 바로 아버지가 스트라스부르에 있으면서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그 유대인 여자와 관계를 가지던 때의 일이죠?” 

 

그때 어머니는 화가의 아내인 유대인 여자와 아버지의 관계를 알고 있었고, 그래서 아버지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태어난 ‘나’를 어머니는 미워하고 용서하지 않았다는 것. 어머니는 고개를 가로 지으면서 크게 울기 시작했다. 그는 어머니와 작별하고 다락방에 돌아와서 그림 속의 ‘소녀’를 보며 말한다. 아직도 이 그림이 어떻게 아버지 손으로 오게 되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어머니 말대로 선물을 받은 것인지, 협박을 해서 얻은 것인지, 또 다른 어두운 그 무엇이 깔려있는지. 그리고 이 그림을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 본다. 화가 르네 달만의 상속인을 찾아 이 그림을 돌려줄 것인가, 그림을 돈으로 바꿔 인생을 쉽게 살 것인가, 아니면 그 돈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까. 그는 고민을 하다가, 그림을 벽에서 떼어 분해한 다음, 벗겨낸 침대의 시트로 감쌌다. 그리고 그날 저녁 바닷가에 가서 그것을 모닥불에 던져버린다. 

 

“유화물감이 녹아내리고, 소녀도 녹아 더 이상 형체를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쓸쓸히 집으로 돌아간다. 작가 베른하르트의 작품 속에는 생의 고독과 허무가 짙게 녹아 있다. 이 소설은 ‘소녀와 도마뱀’이라는 어느 화가의 그림을 통해 부부의 갈등뿐만 아니라, 자식 세대와도 화합할 수 없는 극단적인 가족의 모습을 심도 있게 조명하고 있다. 

 

▲한상훈 문학평론가                    © 포스트24



<약력>

서울 출생, 1986년 《현대문학》 평론 추천 

평론집 『꽃은 말을 하지 않지만』 『현대소설과 영화의 새로운 지평』

『문학의 숲에서 새를 만나다』 『아웃사이더의 시선』 등을 출간하였다.

경기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국제펜 한국본부 회원.

현재 <포스트24> ‘문학 산책’, 계간 <문학미디어> ‘시 계간평’, 계간 <문예운동> ‘문학에 나타난 새 이미지 탐색’ 연재 중. 주로 문학공간에 나타난 ‘꽃’과 ‘새’의 이미지에 대해 연구, 발표하고 있다. 그 외 작가론 및 문학특강 다수

hansan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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