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와 여인

천자 수필, 김후곤 수필읽기 (5)

이지우 기자 | 기사입력 2020/07/24 [13:34]

여자와 여인

천자 수필, 김후곤 수필읽기 (5)

이지우 기자 | 입력 : 2020/07/24 [13:34]

                                                     여자와 여인

                                                                                                   김 후 곤 소설가

 

그 여자는 주어진 역할을 반복했다. 생명보험에 가족의 이름으로 가입했다.
세 살 된 장애아인 딸의 밥에 수면제를 듬뿍 넣었다. 잠에 절여진 딸의 눈꺼풀을 뒤집고 핀을 살짝, 아주 살짝 꽂았다. 딸은 실명하는 불운을 맞았고, 여자는 이에 상응하는 보험금을 받아냈다. 그 누구도 실명의 원인을 눈치 채지 못했다.


다음은 남편 차례였다. 남편은 괴물이었다. 알코올로 잠을 자고 알코올이 부족하면 깨어났다. 여자는 정해진 순서에 따라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뿐, 안타까움도, 슬픔도, 두려움도 없었다. 주어진 사명을 기필코 완수하겠다는 꿋꿋함과 진지함으로 주저하지 않았다.


남편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또, 더 마시게 했다. 남편은 ‘웬 일?’ 하면서도 기꺼이 마셨다. 남편이 술에 취해 쓰러지면, 여자는 남편을 일으켜 세웠다. 남편의 입을 벌리고 글라스로 술을 마시게 했다. 남편이 토하면 토하는 대로 술을 먹였다. 먹이고 마시고, 마시고 먹인 술로 남편은 널브러져 더러워진 걸레처럼 방구석에 처박혔다. 여자가 남편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남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여자, 남편의 눈꺼풀을 뒤집었다. 오른쪽 눈동자에, 왼쪽 눈동자에 숫돌에 잘 벼린 핀을 살짝, 확실한 깊이로 두 번씩 찔렀다. 남편은 귀찮다는 듯 손가락만 조금 움직였다. 여자는  거액의 보험금을 수령했다.
그 여자, 중죄재판소에 출두하게 되었다.

 

이 여인은 30년 동안 헌신적으로 딸을 보살폈다. 딸은 중증장애를 갖고 있었다. 혼자서는 밥을 먹지 못했고,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했다. 말도, 엄마 이외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중얼거림이거나 괴성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출했다. 온전히 엄마의 돌봄에서만 생명을 유지해 나갔다. 휠체어를 밀고 밖으로 나가면 계속 소리를 질러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모두 끌었다. 어떤 사람들은 들으라는 듯이 ‘괴물!’이라고 속삭였다. 마음 착한 사람들의 이해와 안쓰러움을, 위로를 받았지만 계속 밖을 나다닐 수는 없었다. 저절로 집 안에서, 둘 만의 생활을 이어왔다. 외부 세계와는 단절이었고, 서로의 교감은 있을 수 없었다. 이 여인 자신도 일흔 다섯 살이 되어, 아픈 데가  몸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20여 년 전에 저 세상으로 먼저 간 남편이 남겨놓은 유산으로 지금까지 잘 견뎌왔다. 어느 날 들여다본 통장의 잔고에 여인은 새파랗게 질려 고개를 떨구었다.
‘내가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내가 먼저 죽어버리면…. 딸은 어떻게 되는 거지? 돌보아주는 사람은……. 없지, 없어. 당연하지. 딸을 돌보는 어미도 힘들고 귀찮은데.’
이 여인, 꼼꼼히 계획을 세웠다.


불에 잘 타는 옷과 책들을 모두 꺼내 침대 위해 쌓아놓았다. 딸은 수면제를 먹여 잠 재웠고, 집 안 곳곳에 휘발유를 끼얹었다. 나는 어디에 있어야 딸과 함께 불에 잘 타 죽을 수 있을까. 눈물이 방울져 얼굴 가득 퍼진다. 가스레인지를 켜고 종이쪽지에 불을 붙여 소파에 불을 질렀다. 집 전체가 화염에 휩싸인 것은 순식간이었다. ‘괴물’은 불에 타 죽었고, 여인은 불을 끄러 온 사람에 의해 구조되었다.


이 여인, 중죄재판소에 출두하게 되었다.

여자는 10년 형을, 여인은 30년 형을 구형받았다.
옳은가.

 

 

 

 

 ▲김후곤 소설가

 

  [약력]

 □ 현,청하문학중앙회 부회장

 □ 소설가. 수필가

 □ 수필집  『그게 사실은』 , 『숲을 거니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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