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1, -권지예 「뱀장어 스튜」

한상훈 평론가의 문화 산책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3/11/20 [17:44]

문학 산책 1, -권지예 「뱀장어 스튜」

한상훈 평론가의 문화 산책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3/11/20 [17:44]

 

                                        문학 산책 1

                                          -권지예 「뱀장어 스튜」

 

 

                                                                                               (한 상 훈 문학평론가 )

 

권지예(1960~)의 이상문학상 수상작(2002)인 단편 「뱀장어 스튜」는 스페인의 입체파 화가인 피카소(Pablo Ruiz Picasso, 1881~1973)의 그림 <뱀장어 스튜>를 주요 소재로 다루고 있다. 권지예는 1997년 계간 <라쁠륨>에 단편 「꿈꾸는 마리오네뜨」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녀가 등단했던 1990년대는 거대담론이 중심을 이루었던 1980년대와 다르게 신경숙, 은희경, 전경린 등 재능 있는 여류작가들이 많이 등장하여, 문단의 조명을 받고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시기이다. 포스트 모더니즘과 페미니즘의 이론이 주류를 이루었던 이 시기에 여류 작가들의 서사의 기본 골격은 대체로 가정을 가지고 있는 젊은 여자들의 바깥 세계에 대한 욕망이나 동경을 소재로 그린 작품들이 많았다. 

권지예의 소설들도 예외는 아니나, 그의 작품들은 회화적 이미지를 서사 속에 접목하는 독특함을 보인다. 그 이유는 그녀가 파리 유학시절에 그곳의 예술적 분위기에 젖어, 여러 미술관을 순례하면서 세계적인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감동을 받았던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작가는 「뱀장어 스튜」에 대한 후기에서, 1998년 겨울비가 오는 어느 날에 “프랑스 이브리 쉬르 센의 집에서 피카소 화집”을 우연히 보았는데, 그 화집의 마지막 장에 있는 <뱀장어 스튜>의 그림을 보고 작품의 모티프를 얻었다고 말하고 있다. 

 

말년에 <뱀장어 스튜>를 그린 피카소는 “사랑이 없는 삶을 어찌 상상할 수 있겠는가”라는 자신의 말처럼 평생에 걸쳐 많은 여자를 만났고 자기의 그림 속에 반영시켰다. 하지만 정식으로 결혼을 한 여자는 러시아 육군대령의 딸인 발레리나 올가와 <뱀장어 스튜>의 그림에 나오는 자클린이다. 

피카소는 72살 때쯤 27살의 자클린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엄청난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피카소는 인생의 황혼기에 자클린과 20년을 행복하게 살았다. 그녀는 피카소의 마지막 여자로, 그로 하여금 많은 그림을 그리게 했다. 

거칠게 말한다면 피카소에게 밥만 주고 나면 남은 시간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림을 그리게 해서, 피카소는 노년기에 많은 작품을 남기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피카소의 그림엔 초기부터 그가 만나고 사랑했던 여자들의 그림들이 많았지만, 그중에 자클린의 초상화가 압도적이다. 

 

이 소설의 제목이자 피카소가 79세에 그린 그림인 「뱀장어 스튜」는 바로 자클린의 뱀장어 요리를 보여주고 있다. 이 그림엔 “1960년 12월 3일 자클린이 점심식사로 만든 스튜를 위하여, 이 그림을 바침으로써 그녀를 영원히 행복하게 해줄 수 있기만 하다면”이란 찬양의 글이 붙어있다. 

 

그렇다면 이 소설과 그림은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인가. 이 작품은 한 여자와 두 남자에 대한 서사이다. 그렇다고 흔히 소설에서 보듯이 삼각관계를 다룬 것은 아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과거의 남자와 현재의 남편에 대한 이야기로 여자는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젊은 시절 만난 남자는 자유로운 성격의 소유자로 결혼을 원치 않는다. 다시 말하면 여자 관계가 복잡하며, 개방적인 그의 세계관으로 말미암아 특별히 한 여자에게 애정을 쏟지 않는다. 그것은 여자뿐만 아니라 자기에게도 ‘구속’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남자의 인생관은 비윤리적이지만 인생에 대한 열정적인 모습으로 비치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뱀장어의 몸부림과 같은 격정”이기도 하다. 여자는 그러한 남자와 사랑을 하고 아기를 갖는다. 하지만 자유로운 삶을 원하는 남자의 세계관 때문에 여자는 임신을 하고 아기를 낳은 것을 말하지 못한다. 

결국 그녀의 부모에 의해 아기를 유럽으로 입양 보내게 된다. 사랑하는 남자의 아기를 낳았지만 남들처럼 제대로 키우지도 못하고 강압적으로 빼앗기게 된 것이다. 

 

작가는 그녀의 상처 받은 모성을 바퀴벌레가 강력 접착제의 끈끈이 종이 덫에 걸려 죽어가면서도 알을 놓는 장면을 통해 매우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더구나 “꽁무니에서 쑥 빠져나온 알주머니는 따끈따끈할 것만 같다. 그녀의 손이 다가간다. 엄지손톱을 밑으로 한 채 집의 지붕을 아래로 꾹” 눌러서 알을 터뜨리는 그녀의 행위는 은밀하고 잔인한 느낌을 준다.

  

그녀의 남편은 화가이다. 그는 여자를 잘 이해하고 사랑하지만, 여자는 어딘지 허전함을 느낀다. 그렇기에 과거의 남자가 그녀에게 아픔을 주었지만, 그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결국 여자는 남편과 함께하는 안온한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3년 만에 과거의 그 남자에게 전화를 한다. 

 

“삼년 만에 만난 남자는 그닥 많이 변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독신이었고, 다만 그동안 좀 더 넓은 아파트로 옮겼을 뿐이다. 

 

“벽에 마티스의 복제화가 한 점 걸려있다. 벗은 여체들의 검은 실루엣이 어울려 원무를 추고 있다.”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는 외관을 중시하는 전통적이고 사실적인 기존의 색채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인간의 내적 정서의 강렬한 색채를 중시하는 야수파의 대표적 화가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입체파의 피카소와 더불어 20세기 회화를 새로운 혁명으로 이끈 화가로 평가 받고 있다. 

 

이 소설에서 벽에 걸린 마티스의 도발적이고 역동적인 그림의 풍경은 바로 불꽃같이 살아온 그 남자의 삶을 상징한다. 

그 남자는 나에게 오고 싶을 땐 언제든지 오라고 그녀에게 말한다. 예전에도 항상 똑같이 말하곤 했다. 그래서 여자는 한국을 나와서 지쳐있을 때 잠깐 남자에게 들렀다간 돌아가곤 한 것이다. 

 

“벽이 없으므로 문도 없어 늘 바람처럼 허허롭던 남자의 집” 

 

여자는 스무 살에 남자를 만났다. 이 남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 남자의 감옥”에 갇히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여자의 소망일 뿐 남자는 결혼이라는 보편적인 삶의 양식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여자는 남자 몰래 아이를 낳고도 말하지 못한 것이고,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는 모르고 있다. 그에 비해 현재의 남편은 어떤가. 여자는 남편에게 한 달만 나가 있겠다고 하고선 그 외출이 길어지고 있다. 집을 나온 지 58일째 되는 날, 남편으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당신은 자유로운 여자니까, 그러나 당신이 내게 끝내 말없이, 홀로 호시탐탐 늘 떠나갈 궁리를 했다고 생각하면 끝없이 괴롭소. 서로가 소통을 하려고 노력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오.” 

 

아내의 과거를 알고 있으며, 감당하기 힘든 그녀의 외도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인내하며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내의 여행이 빨리 끝나길 바라고 조금이라도 더 소통하고 화합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여자는 남편보다 남자를 사랑하지만, 그 남자를 선택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남자는 어떤 여자도 ‘구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여자뿐만 아니라 그 남자를 만난 다른 여자들도 결국 다 떠나가고 마는 것이다.

 

“집착이 없는 관계, 이게 무슨 사랑이야?” 

 

지나치게 이성에 집착을 해도 상대방에게 피곤한 일이지만, 집착이 전혀 없는 남자의 무심함에 그의 세계관을 이해를 하면서도 여자는 실망하고 만다. 여자는 자기를 이해해주고 있는 현재의 남편에게 되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한순간의 깊은 상처는 긴 세월 동안 흉터를 남긴다. 함께하는 세월 동안 남편은 그녀의 흉터를 핥아줄 것이고 그것이 사랑이 아니어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에게서 받은 상처가 현재의 남편과 함께 머물면서 조금씩 아물기를 바란다. 내가 생각나면 언제든지 오라는 그 남자에 대한 사랑은 맹목이고 거품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아무리 젊은 시절의 철없는 사랑이라 해도, 그 결과가 지금쯤 유럽에서 크고 있을 그 남자의 아이를 상상하면 여자는 너무나 괴로운 것이다. 

 

작가 권지예는 이 소설에서 여자가 지닌 사랑의 양면성을 두 남자를 통해 치열하게 그려나가고 있다. 열정적이고 낭만적 삶과 현실적이고 안정적 삶 사이에서 흔들리는 자아의 충돌을 통해 인간의 본질적 모습을 조명한다. 

이 글의 주인공은 평범한 삶이 주는 권태로움에 고통을 느껴서, 과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 역시 그녀에게 어떤 삶의 해법을 명쾌하게 제시하지 못한다. 결국 그녀는 집으로 돌아왔고 남편은 피곤에 지친 그녀를 위해 삼계탕을 끓여주고 있는 것이다. 

 

“살아서 펄떡이는 것들을 모두 스튜 냄비에 안치고 서서히 고아내는 일, 살의나 열정보다는 평화로움에 길들여지는 일. 그건 바로 용서하는 일인지 모른다.” 

 

이제 여자는 지난날의 남자에 대한 뜨거웠던 사랑의 열정보다는 평화와 안정에 인생을 맡기고 싶은 것이다. 그러한 여자의 내적 세계는 “뱀장어 스튜를 만들려면 불이 세지 않아야 한다. 아주 고요하고 평화로운 화력이어야 한다.”는 피카소의 그림 <뱀장어 스튜>와 동일한 지점에 놓인다. 

 

 ▲ 한상훈 문학평론가.                            © 포스트24


□한상훈 문학평론가 

 <약력>

□서울 출생, 1986년 《현대문학》 평론 추천 

□평론집 『꽃은 말을 하지 않지만』 『현대소설과 영화의 새로운 지평』 『문학의 숲에서 새를 만나다』 『아웃사이더의 시선』 등을 출간하였다.

□경기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국제펜 한국본부 회원.

□현재 <포스트24> ‘문학 산책’, 계간 <문학미디어> ‘시 계간평’, 계간 <문예운동> ‘문학에 나타난 새 이미지 탐색’ 연재 중. 주로 문학공간에 나타난 ‘꽃’과 ‘새’의 이미지에 대해 연구, 발표하고 있다. 그 외 작가론 및 문학특강 다수

□이메일: hansan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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