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공간의 꽃 이미지 산책 (6)

장미 이미지⓵ 한상훈 문학평론가

이지우 기자 | 기사입력 2020/07/02 [21:13]

문학공간의 꽃 이미지 산책 (6)

장미 이미지⓵ 한상훈 문학평론가

이지우 기자 | 입력 : 2020/07/02 [21:13]

                             

  © 포스트24

 

                               문학공간의 꽃 이미지 산책 (6)

                                                     -장미⓵


                                                                                                  한 상 훈(문학평론가)

 

장미꽃은 아름답고 향기롭다.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 오늘날 장미의 품종을 6~7천 종이나 만든 것일까. 장미는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꽃으로 사랑이나 정열의 뜨거움을 지니고 있어, 애정의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는 대표적인 꽃이다. 사랑과 미의 상징인 ‘장미’를 대상으로 작가들의 문학적 상상력을 환기시킨 작품은 수없이 많을 것이다. 이번 글에선 장미꽃과 관련된 외국문학 3편을 감상해 보자.


우선 남미의 대표적 작가이며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의 장편 『콜레라 시대의 사랑』(송병선 번역)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이 소설은 작가의 고국인 콜롬비아의 카리브 해안 항구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데, 남자의 여자에 대한 사랑이 질병이라 말할 만큼 지독한 집착을 보인다. 작가는 콜롬비아의 복잡한 사회, 정치적 상황을 폭넓게 조명한다. 그러한 시대적 현실 속에서 남녀의 운명적 사랑을 낭만적으로 그려나가고 있다. 필자는 이 글을 읽고나서, 무엇보다 이 작품이 문학성과 대중성의 양면을 고루 지니고 있어, 현대소설이 나가야 할 지평을 잘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이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면, 난 절대로 노인이 되지 않겠다며, 나이 예순 살에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제레미아 드 생타무르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는 실제로 예순 살이 되자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자살한다. 한 송이 ‘장미’로 나를 기억해달라는 유서를 남긴다. 그녀는 자기 집으로 돌아와선 그를 생각하며 “상복을 입고 정원에서 새벽의 첫 장미”를 꺾는다. 여기에서 ‘장미’란 바로 ‘아름다운 사랑’의 전형적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다. 남자 주인공인 플로렌티노가 어머니의 묘지에 ‘장미덤불’을 심어준 것도 마찬가지다.


이 에피소드뿐만 아니라, 『콜레라 시대의 사랑』의 주인공인 플로렌티노와 페르미나의 험난하고 운명적인 사랑의 드라마 속에서, ‘장미’는 애정이나 열정의 기호로 이미지화 되어 있다. 플로렌티노는 청춘 시절에 가문이 별로라는 이유로 페르미나와 결혼에 실패하지만, 그녀를 결코 단념하지 않는다. 세월이 흐르고, 오십여 년 후에 드디어 사랑을 되찾을 기회가 온 것이다. 그녀(페르미나)의 남편인 팔십대의 우르비노 박사가 망고나무 위에 앉아있는 앵무새를 잡으려고 올라갔다가 떨어져 죽게 된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칠십대에 접어든 노인인 플로렌티노는 상중의 그녀에게 노골적으로 애정 표현을 한다. 그때 플로렌티노는 청년처럼 어떤 색의 장미꽃을 들고 그녀를 찾아가 위로를 할까 고민한다.


“불처럼 뜨거운 열정의 상징인 빨간 장미는 상중인 여자에게는 결례가 될 수 있었다. 행운의 꽃이라는 노란 장미는 통상적으로 질투의 표현이었다. 언젠가 터키의 검은 장미에 관해 말하면서 아마도 그녀에게 가장 적당한 꽃이리라 생각했지만”, 그는 결국 ‘흰 장미’로 결정한다. 이 장면은 남자의 여성에 대한 자상함이라기보다, 절대적 사랑으로 말미암아 소심해진 남자의 내적 풍경이다.
“그녀는 흔쾌히 흰 장미를 받았고, 그래서 흰 장미는 화요일마다 치르는 의식을 더 풍요롭게 해주었다.”
그리하여 결국 그의 애정 표현을 상징하는 ‘장미’는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게 되고, 노년기에 두 인물은 “우리 목숨이 다할 때까지” 아름다운 인생의 동반자로 살아가게 되는 작은 매체 역할을 한다.

 

프랑스 민중문학의 신호탄을 올린 에밀 졸라(Émile Zola)의 『목로주점』(박명숙 번역)에서 여자 주인공 제르베즈의 생일날로 들어가 보자. 빈곤한 생활 속에서 힘겹게 작은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제르베즈’는, 모처럼 생일날에 거위 요리를 준비해 놓고 가까운 이웃들을 초대한다. 이때가 제르베즈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시기이다. 평소에 그녀를 사랑하여 물질적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젊은 청년 구제는 ‘장미나무’를 들고 어색한 표정으로 수줍어하며 생일 파티에 합류한다. 그녀를 짝사랑하는 대장장이인 ‘구제’가 뒤늦게 나타난 것이다. 그는 ‘장미나무’를 가지고 나타나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모두들 깔깔대고 소리를 지르면서 장난을 치고 있을 때 구제가 나타났다. 두 손으로 커다란 하얀색 장미나무를 들고 있던 그는 안으로 들어올 용기를 내지 못한 채 머뭇거렸다. 장미나무의 우아한 줄기가 그의 얼굴에까지 올라와 황금빛 수염과 꽃들이 한데 뒤섞인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구제의 속마음을 아는 듯, 마침 남편이 부재중이어서, 볼에 키스를 할 수 있도록 두 손을 잡았는데, 그가 엄두를 못내고 말조차 더듬거리자, “발뒤꿈치를 들어 그의 입술에 뺨”을 갖다대는 귀여운 동작을 한다.


이 소설에서 구제의 제르베즈에 대한 깊은 애정은 어떠한 사랑의 성취도 이루지 못하고 혼자만의 짝사랑으로 끝난다. 제르베즈가 사랑했던 남자는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결국 첫사랑 남자인 랑티에와 현재의 남편인 쿠포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가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하고 가난 속에서 비참하게 죽고만다. 성격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순수하고 착한 구제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제르베즈와 함께 행복한 삶을 이룰 수도 있었을 것이다.

 

러시아의 리얼리즘 작가인 투르게네프(Ivan Sergeevich Turgenev)의 장편 『아버지와 아들』(이항재 번역)에선, 제목이 암시하듯 세대 간의 갈등이 치열하게 나타나고 있다. 주인공인 바자로프가 친구인 아르카디의 고향인 마리노 마을에 머물면서, 친구 아버지(니콜라이)의 동거녀인 페네치카와 서로 호감을 갖게 된다. 작가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젊은 여인들의 생애에는 마치 여름날의 장미처럼 갑자기 꽃봉오리가 터지고 꽃이 활짝 피는 시기가 있는 법인데, 페네치카에게 그런 시기가 시작된 것이다. 모든 것이, 심지어 그 무렵 한창이던 7월의 무더위까지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도왔다.”


이처럼 여인의 젊고 아름다운 모습을 ‘장미’로 비유하고 있는 점은, 우리나 서구문학뿐만 아니라 투르게네프의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의학을 전공한 바자로프는 페네치카의 아이가 잠을 못자고 힘들어하자 ‘물약’을 주어 도움을 준다. 그 고마움으로 그녀는 돈을 주려고 하자, 바자로프는 제가 원하는 것은 ‘장미꽃 한 송이’라고 말한다. 
그녀가 ‘붉은 장미’를 꺾어서 주자, 그는 기쁘게 그 꽃을 받고나서, 향기가 너무 좋다며 냄새를 맡아보라고 한다. 그녀가 장미 향기를 느끼기 위해 얼굴을 바짝 꽃에 밀착하니, 바자로프도 “당신과 함께 향기를 맡고 싶군요.”라고 말하면서, 꽃을 사이에 두고, 그녀의 얼굴과 가까워진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재빨리 그녀의 입술을 훔친다. 바자로프의 사랑의 작업이 ‘장미’를 매개로 달콤하고 재치 있게 이루어지는 장면이다.


안타깝게도 두 사람의 이러한 낭만적 행위는 친구의 큰아버지인 파벨에게 들킨다. 그렇지 않아도 가치관의 대립으로 충돌하고 있던 두 캐릭터는 이로 말미암아 결투까지 하게 된다. 
바자로프의 페네치카에 대한 연정은 진정성은 있으나 크게 발전하지 못하고 일시적 사랑에 머문다. 오히려 그의 열정적인 사랑의 대상은 따로 있었다. 그는 장티푸스 환자의 시체 해부를 하다가, 수술용 칼에 손가락이 베어 감염되는 사고가 일어난다. 그로 말미암아 그가 죽기 직전에, 마지막 사랑의 고백을 나누는 여자는 바로 젊은 과부인 오딘초바인 것이다. 바자로프는 평소에 오딘초바를 마음에 두었으나, 사랑의 감정을 제대로 표시하지 못하고 있다가 임종이 다가와서야, 그 여자를 부른 것이다.


그렇다면, 장미를 매개로 바자로프와 인연을 맺었던 페네치카는, 그 후 어떻게 된 것일까. 그녀는 니콜라이의 아들 아르카디가 카챠와 결혼할 때, 동시에 니콜라이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한상훈 평론가

 

  [약력]
 □ 서울 출생, 1986년 《현대문학》 평론 추천
 □ 평론집 『꽃은 말을 하지 않지만』 『현대소설과 영화의 새로운 지평』 『문학의 숲에서 새를 만나다』 『아웃사이더의 시선』 등을 출간하였다.
 □ 현재 <문예운동> 연재평론, <시문학> 월평, <문학미디어> 시 계간평을 쓰고있으며, 월간 <시> ‘청년시인상’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한국문인협회, 국제펜 한국본부 회원 hansan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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