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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 시평 (39) 박홍점 시인

고향집과 광장이 주는 개별적이고 다의적인 감정 (『언제나 언니』(파란, 2023))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3/11/06 [21:26]

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 시평 (39) 박홍점 시인

고향집과 광장이 주는 개별적이고 다의적인 감정 (『언제나 언니』(파란, 2023))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3/11/06 [21:26]

 ▲사진= 이영자 기자.                                                                            © 포스트24

  

 

                               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시평(39) -박홍점 시인

                       -고향집과 광장이 주는 개별적이고 다의적인 감정 (『언제나 언니』(파란, 2023))

 

 박홍점 시인의 고향집에는 키 큰 은행나무 한 그루와 댓잎들이 서로 몸을 비비대며 집을 감싸고 있다. 고향집은 공간적 의미보다는 장소와 관련된 의미들이 더 많다. 시인이 장소에서 가족 역사성을 통해 이 집의 현재와 과거를 동시에 바라본다. 이때 그 고향집에 대한 시인의 총체적 이미지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얽힌 근대성의 시간 안에서 고향집이 들어 있던 주름진 가족의 서사는 어떻게든 낡아가기 마련이다. 그 사이 고향집의 모든 서사들은 소멸되어 시공간 안으로 미끄러지게 된다. 따라서 이 배열 대한 비판과 그리움의 시 쓰기는 소멸된 고향집의 역사성을 파헤쳐 재현하는 작업이고, 자아의 미래 전망을 제시하는 작업이다. 

 박홍점 시인의 시에서 시적 자아는 현재에서 과거로 개별적인 역사성을 탐색하게 되는데, 탐색의 시적 장치가 ‘회귀’이다. 회귀는 소멸된 장소의 역사성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고향집은 유년기 시적 자아와 모성이 함께 했던 그리움과 상처의 장소이고, 가족공동체의 고통과 죽음이 펼쳐졌던 서사의 장소이며, 부조리한 사회 체제를 비판하고 싶은 시  쓰기 장소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과거로의 재현을 통해, 가족구성원으로서 자기 뿌리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 (「안식일」 , 「구근들」, 「물의 감정들」, 「복수초의 격려」) 

 우선, 이 시집에서 자아는 장소에 대한 재현 방식으로 고향집과 나무를 연결하는 작업을 한다. 매개 물질이 ‘바람’이다. 바람은 실체가 없어 붙잡을 수 없지만 집을 호흡게 하고, 키 큰 은행나무와 댓잎들을 서로 연결시켜 집을 감싸게 한다. 나무와 나무가 서로 연결되듯 유년의 시적 자아와 모성 또한 고향집에서 서로 연결된다. 둘은 상처를 보듬고 외로움을 나눈다. 외로움의 테제는 “한 개의 불빛이 강 건너 수십 호 불빛을 바라”보는 시행에 잘 나타나 있다. (「클레멘타인」)한 개의 불빛에 비유되는 대상은 ‘외딴집’이다. 이 장소는 자아의 외로운 공간이지만, 외로움을 외로움 그 자체로 두는 게 아니라, “삶을 변환하는” 테제와 맞물려 있다. 이 테제는 ‘모성의 뿌리 찾기’(「눈사람」, 「방」, 「안식일」, 「봄날의 이별」)에서 벗어나 세계를 향한 모성 확장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이를테면 자아는 개별적인 모성에서 좀 더 나아가 밥과 관련된 하숙집 여인을 ‘우리의 모성’으로 확장해 나간다. (「엄마의 탄생」)

 

      때로 몰려온 연어들

      푸릇한 새싹들

 

      영하 7도라고 말하는 순간 몰려오는 한기

      미처 준비하지 못한 미소된장국

      엄마는 난방을 올린다

 

      아침 식탁에서 털조끼를 걸치고 포수가 된 엄마

 

      언제나 엄마는 속으로 먼저 춥다

      먼저 배고프고

      먼저 짜고 

      오래 걸어 봐서 먼저 아프다

 

      <중략>

 

      쿠스미 티, 쿠스미 티

      기브미 티, 기브미 티

 

      유방이 없어도

      아이를 낳은 적 없어도

      밥을 차려 주는 사람은 언제나 엄마다

                                                                         -「엄마의 탄생」 일부분

 

 박홍점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 장소성이 주는 의미는 ‘모성 세우기’다. 1연을 보면 도시적 배경인 삶의 공간, 즉 하숙집이라는 장소를 떠올리게 한다. 고향집과 하숙집은 꽃들로 상징된 모성을 재해석하는 장소다. 「엄마의 탄생」에서 하숙집 엄마는 “속으로 먼저 춥고”, “먼저 배고프고”, “먼저 짜고”, “먼저 걸어”보는 존재다. 「양귀비꽃밭을 찾아가는 중입니다」에서도 엄마는 “끼니를 놓치고”, “기차를 놓치고”, “조상의 기일”까지 놓친다. 두 기표를 종합해 보면 모성의 몸은 결핍과 상실이 공존하는 장소로서의 특징을 내보인다. 그 예가 확장된 모성, 즉 “밥을 차려 주는 사람”이다. 이 모성은 “쿠스미 차든, 기브미 차”든 아이들이 몰려 와 달라고 하면 그 책임감에 차를 내어준다. 우리의 부엌에서 ‘밥’은 ‘엄마’라는 공식이 성립하는데, ‘밥’과 ‘밥 주는 여인’의 기표가 환유이다. 그러니까 ‘밥 주는 여인’이 세계의 모성, 즉 우리의 모성으로 확장되어 세워진 것이다. 

  두 번째로 고향집의 엄마와 하숙집의 여인이 ‘모성의 뿌리’로 자리매김한다면, 또 다른 의미에서 고향집은 자아의 그리움과 결핍을 드러내는 장소이다. (「언제나 언니」, 「공지사항」, 「주먹장미가 필 때 소년은 온다」, 「우리는 늘 이별이다」 등) 왜냐하면 고향집에서 아버지의 죽음이 있고, 언니와 남동생의 죽음이 있다. 시적 자아의 마음은 늘 죽은 가족들을 향해 열려 있기 때문이다. 그중 부성의 죽음은 자아에 그리움과 열망을 안겨 준다. 자아는 죽은 아버지를 기다리며 “매일 창가에 앉아”서 당신과 같이“회전목마를 타 보고 싶”고, “눈썰매”도 같이 타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하지만 부성의 부재는 타자들에게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내기에 “거짓말”로 아버지를 삭제해 버린다. 이외에도 온 가족의 죽음은 자아에 큰 고통을 안겨 준다. 이 죽음으로 인해 가족공동체가 와해 되어 각자 개인주의 성향으로 흐른다. 아버지가 일구어낸 꽃밭은 비옥했다, 그러던 것이 가족의 죽음 이후에는 “저희끼리 손잡고 담쟁이덩굴 뻗어가”며 잘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행위는 가족 구성원이 각자 개인주의 성향으로 흐르고 있음을 말해준다. (「방」, 「그날 식탁 위에 떨어진 단풍잎」) 따라서 고향집은 추상적인 공간이 아니라, 개별적이고 다의적 의미를 지닌 희노애락의 장소인 것이다.

 셋째로 시적 자아는, 남동생과 소시민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비도덕적인 집단에 대해 ‘혁명’적인 시 쓰기를 생각한다. 「밤의 산책」, 「제대로 된 혁명을 읽는 동안」, 「보리수 열매가 호명하는 풍경들」, 「주먹장미가 필 때 소년은 온다」는 그러한 면에서 좋은 예시이다. 

 

      뒷발질이나 한번 했을 지도 모를 일

      남을 웃기면서 함께 웃는 게 꿈이라고 했다

      그러나 거리는 웃음을 꺼낼 수 없게 했고

      별안간 피 흘리는 보통의 어깨와 골목에서 마주쳤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소식이 횡횡했다

 

      딸 다섯을 낳고 늙은 무릎으로

      촛불로 빌어서 낳은

      제 부모의 유일한 아들

 

      17세, 주말이면 반찬이나 용돈을 받으려고

      덜컹거리는 버스에 몸을 싣던 어린 자취생

      

      총탄이 소년을 가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먼저 떠오른 것은 노부부의 닳아버린 무릎과 굽은 등

      광장의 시신들을 뒤적였을 애타는 손

      차마 울지도 이름 부르지도 못했을

      제 어미의 자식

 

      오월이면 머리를 긁적이며 온다

      -종면이 친구 행렬이에요

                                                         -「주먹장미가 필 때 소년은 온다」 일부분

      

  박홍점 시인의 시에서 서너 편은, 구체적인 장소와 인물을 지칭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시편은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이 있다는 걸 암시하고 있다. 인물의 상태와 상황에 대한 암시는 ‘어린 자취생’을 대상으로 한 장소성의 환기력을 보여준다. 어린 소년이 죽은 장소는 광장이지만 정신의 근원은 고향집이다. 17세 소년은 “주말이면 반찬이나 용돈을 받으려고/덜컹거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 집으로 가는 행위가 그것이다. 소년은 고향집에서 미래를 꿈꾸고, 가족의 정을 느끼며 웃음꽃을 피운다. 그런데 부조리한 집단이 총탄으로 이 소년을 가격해 버린 것이다. 이때의 광장은 저항의 함성과 총소리와 죽음만이 있는 장소다. 이 외의 장소에서도 “뿔테안경 선생”이 잠적해버렸고, 골목에서도 “보통의 어깨”가 피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들의 행위는 남동생의 죽음과 별개가 아니다. 결국 광장을 중심으로 부조리한 집단은 어린 학생과 소시민을 대상으로 무자비하게 폭력과 탄압을 자행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상기해 볼 때, 시적 자아는 처음으로 ‘혁명’과 ‘단결’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혁명은 개인의 힘으로는 무력 집단을 전복할 수 없다. 그러나 작게나마 시쓰기로는 힘을 키울 수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박홍점 시인의 이번 시집은 시사하는 면이 크다. 왜냐하면 시인은 『피스타치오의 표정』에서 다소 거칠지만 고요하고 수동적인 시적 특성을 드러냈다면, 이번 『언제나 언니』에서는 장소성을 통해 모성의 뿌리를 재발견하고, 비판과 저항의 의미에서 ‘혁명’과 ‘단결’이란 시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획일을 추구하는 혁명은 하지 마라

      혁명은 우리의 산술적 평균을 깨는 결단이어야 한다

                                                           -「제대로 된 혁명을 읽는 동안」 일부분

 

 자아의 당위적 의지가 들어 있는 이 시는 ‘고향집’ 장소와 무의미한 관계가 아니라 서로 유의미한 관계다. 장소의 내용은 몇 가지로 함축되어 있다. ‘모성의 근원’, ‘가족의 죽음에 의한 그리움’과 ‘결핍으로서의 장소’, 등이다. 그렇다면 한 가족의 역사성을 보여주는 ‘죽음’과 ‘결핍’의 언어는 ‘혁명’과 ‘단결’을 끌어내기에는 충분하다. 이 결단이 ‘산술적 평균을 깬다’는 의미에서 깨는 행위는 쉬운 결단이 아니라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혁명적인 시 쓰기이자 시정신일 것이다. 

 간략하게나마 시편에서 박홍점 시인의 태도와 감정이 드러나는 장소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살핌은 시인의 뒷배가 되는 고향집과 ‘광장’ 경험을 탐색하는 장소지만 그에 앞서 우연한 기회에 박홍점 시인으로부터 이 시집을 선물 받은 채무감이 더해 분석해 보았다. 시의 효용성은 시인이 쓴 시의 태도와 신뢰에서부터 시작된다. 시인이 한땀 한땀 사건과 정황을 재구성할 때의 심정을 우리는 깊이 공감하고, 그 공감에 대해 시집의 가치를 인정하고, 또 교훈을 얻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그러한 믿음과 태도에서 박홍점 시인뿐만 아니라 다른 시인들 역시 시 쓰기를 혼례의 대상으로 삼아서 계속 써나갈 것이다. 박홍점 시인의 강한 환기성을 보여주었던, ‘산술적 평균을 깨는 결단’을 다음 시집에서 기대해 본다.  

 

 ▲박홍점 시인의 시집.       © 포스트24

 

 

〚박홍점 시인 약력〛

□전라남도 보성에서 태어났다

□서울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8년 『문학사상』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차가운 식사』, 『파스타치오의 표정』, 『언제나 언니』를 썼다

 

 

 

 

 ▲ 권영옥 시인, 문학평론가.    © 포스트24

 

 

 

 

 

 

 

 

 

 

 

 

 

 

〚권영옥 시인, 문학평론가 약력〛

□아주대 대학원 국어국문과 졸업(문학박사)

□2003『시경』작품활동 시작, 2018『문학과사람』평론 연재

□비평집『한국현대시와 타자윤리 탐구』,『구상 시의 타자윤리 연구』,

□평론집『비시간성에 의한 그림자 시학』

□시집『청빛 환상』, 『계란에 그린 삽화』, 『모르는 영역』

□전)상지대, 아주대 외래교수, 『두레문학』편집위원, 《포스트24》시평 연재

□<두레문학상> 수상, 문예비평지『창』편집위원

□<두레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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