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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시를 만지작거리다

김단혜 수필읽기(2)

이지우 기자 | 기사입력 2020/07/01 [08:44]

여름, 시를 만지작거리다

김단혜 수필읽기(2)

이지우 기자 | 입력 : 2020/07/01 [08:44]

                                           여름, 시를 만지작거리다(2)
 
                                                                                                                 김단혜
 
시를 만지작거리는 시시한 밤입니다. 이런 밤 당신은 무엇을 하시나요? 저는 루이보스를 마시며 EBS 라디오 시 콘서트를 듣고 있습니다. 시 그리고 시 읽어주는 여자와 마주 앉습니다.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는 여름밤입니다. DJ 명세빈의 차분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읽어주는 시를 듣다가 심장이 쿵 하는 시인이라도 만나면 이 밤을 꼬박 지새울 수도 있습니다.


윤덕원이 진행하는 시 콘서트에서 연락이 온 것은 그해 겨울이었습니다. 마음을 전하는 시 한 편 코너에 출연해 달라는 것입니다. 오랜만에 가슴이 콩콩 뛰었습니다. 시라면 가슴에 지진이 나는 마음을 들킨 것 같았습니다. 

 

시를 먼저 고르고 사연을 전해야 하나 아니면 사연에 어울리는 시를 찾아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방송이니 낭송하기 좋은 시가 좋겠지. 그래도 좋아하는 시를 선택할 거야. 머리는 복잡하면서 마음은 향기로운 차를 한잔한 듯합니다. 마치 프러포즈 받은 여자의 마음이랄까요. 사실 좋아하는 시 한 편을 고르는 일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책 한 권 추천해달라고 하면 가장 힘든 것처럼 말입니다. 그 말은 마치 지하 2층 지상 7층짜리 백화점에서 단 한 가지 물건을 선택하기만큼이나 어렵습니다. 그렇게 오랜만에 시와 놀았습니다. 그 밤은 詩詩했습니다.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이제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 괜찮아 / 이제 괜찮아
                                                                                          한강의 시 ′괜찮아′중에서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라는 한강의 시집입니다. 서랍에 넣어둔 시를 꺼내 시집을 낸 것은 딸아이가 결혼할 무렵이었습니다. 한 권의 시집은 친구처럼 제게 다가왔습니다. 힘들 때마다 시집을 읽었습니다. 딸아이가 처음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올 것이 왔다는 그 허전함을 달래주던 시집입니다. 

 

한강의 시를 외우며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걸었습니다. 딸아이가 첫 아이를 가졌다고 기뻐할 때도 한강의 시집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괜찮아 이제 괜찮아 하면서 방바닥을 수없이 돌았습니다. 시콘서트에 자신의 이야기가 나가고
‘엄마, 시 선물 고마워 감동적이야!’
라는 문자를 보냈을 때도 눈물을 찍으며 한강의 시집을 펼쳤습니다.
 
얼마 전 딸아이는 3.2킬로의 아기를 낳았습니다. 딸아이를 꼭 빼닮은 공주님입니다.
처음에는 부서질까 봐 안지도 못 하겠다고 하던 딸아이는 젖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며 말합니다.
“엄마, 괜찮지!”
대답 대신 다시 시집을 펼칩니다.
 

 

 

 

 

   ▲ 김단혜 수필가


   〔약력〕

   □ <한국작가> 2010년 수필등단
   □  성남문학상 수상 (2018년)
   □  시집<괜찮아요, 당신> 책 리뷰집<들여다본다는 것에 대하여>
   □  수필집<빨간 사과를 베끼다>
   □  이메일 :  vipapp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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