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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공간의 꽃 이미지 산책(16)

복사꽃⓶, 한상훈 문학평론가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1/05/05 [02:18]

문학공간의 꽃 이미지 산책(16)

복사꽃⓶, 한상훈 문학평론가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1/05/05 [02:18]

                                

 ▲ 복사꽃.                                                                                                    © 포스트24

 

                                        문학공간의 꽃 이미지 산책(16)
                                                            -복사꽃 ⓶


                                                                                               한 상 훈 (문학평론가)


이번 문학 이미지 16회는, 2회에 발표했던 ‘복사꽃’의 2편에 해당된다. 이 글에선 복사꽃과 관련된 우리 소설 2편을 소개하려고 한다.
우선, 한국의 대표적인 여류작가인 오정희의 짧은 소설 「복사꽃 그늘 아래서」를 감상해 보자. 여성적 외로움과 한의 정서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녀’는 춘천 근교에 위치한 허름한 산장의 숙박업소 종업원이다. 이미 중년의 시기도 한참 지나고, 노년기에 접어들었다. 가끔 손님들이 오면 그들을 객실로 안내하는 등 여러 가지 잡일을 하면서, 남편과 함께 그곳의 방 한 칸을 얻어 겨우 살아가고 있다.
남편은 두 번이나 교통사고를 당해서 “다리를 절고 정신마저 흐린”데다가, 날이 조금이라도 추워지면 “뼈가 아프고 몸에 얼음이 든 것” 같다는 등 불평이 많은 영감이다. 그녀는 산장에 오는 손님들 중에, 중늙은이로 보이는 남자가 젊은 여자를 억지로 데리고 들어오는 경우를 보면, 호통을 쳐서 내쫓는다. 그러다가 주인 아줌마에게 “할머니 성질 좀 죽이라고” 잔소리를 듣곤 한다.

그녀는 젊어서부터 남편에게 한이 많이 맺힌 여자다. 열아홉에 스물네 살의 면서기와 족두리도 못쓰고 정혼을 한 것이 벌써 오십 년이 되었다.
 “잔칫날을 한 달 앞두고 이윽한 봄밤, 만발한 복사꽃 가지를 흔들어 꽃비를 뿌려주던 청년에게 그녀는 꿈꾸듯 안겨버렸다. 복사꽃 향기에 취해 있었다. 그런 후에야 그가 이미 처자가 있는 몸이라는 것을 알았다.”
즉, 이 소설에서 복사꽃의 낭만적 분위기는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파탄에 빠지게 하여,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남긴 슬픈 사랑의 매개체로 작용한다.
남편인 그는 천연덕스럽게 두 집 살림을 하였고, 정이 없어 살지 못하겠다던 본처에게서는 아이들이 계속 태어났다. 그녀는 자기 몸에서 아기가 생길 때마다 “사납고 모진 팔자”를 나 혼자 지고 가겠다고, “할미꽃의 독즙”을 계속 마시고, 아기집을 없애버린 것이다.
그러던 중 이십 년 전에 본처가 죽고 나서야, 남편이 그녀에게 와서 얹혀살게 되었다. 그때는 이미 반거충이가 되어버려서 “말이 좋아 남편이지 사십 줄에 일자리를 놓아버린 터이고 병치레가 잦아 평생 철 안 드는 자식 하나 거느린 셈”으로 지내고 있다. 당연히 남편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깊어 당장 나가버리겠다고 큰소리는 치지만, 사실 그럴 만큼 그녀는 독하지도 못하다.

오늘도 손님들이 비우고 간 방마다 청소나 빨래 등 일거리가 쌓여있다. 하지만 일이 잡히지 않아, 바깥에 나온다. 그리고 무심히 산장 아래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바라본다. 그때, 영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는 신혼부부가 손을 잡고 올라오고 있는데, 신부가 입고 있는 ‘녹의홍상’이 너무나 부러웠다. 그 이유는 자신은 평생 입어보지 못한 옷이기 때문이다.
근데 그 신부가 그녀를 부르더니, 미소를 보이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 달라고 한다. “자신 없이 머뭇거리는 그녀에게 일러주고는 신부는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 아래 신랑과 나란히 섰다.”
사진을 찍기 위해, 신랑이 서 있는 곳에 붙어서, 복숭아나무 가지를 흔든다. 그 순간 꽃비가 쏟아지고, 신부는 행복하게 활짝 웃는다.
“까마득한 세월의 저쪽, 그 이윽한 봄밤 온몸으로 피멍들 듯, 아프게 떨어져 내리던 꽃비와 향내가 생생하게 되살아났던 것이다.”
 
이처럼 이 소설은, 그녀의 가슴속에 맺힌 서러움을 과거와 현재의 대비를 통해 독자들에게 강렬하게 전달하고 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그녀에게 지난날 남편과의 상처가 아물지 않고 계속 덧나기만 한다. 그녀의 굴곡진 삶을 통해 독자들은 남편이나 가족에게 희생당하고 살아온 한국의 전통적 여인상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복사꽃이 활짝 피어있는 곳에서 정답게 포즈를 잡고 있는 신혼부부의 사진을 찍어주어야 하는 그녀의 처지는 애처롭기만 하다. 제목에 제시된 ‘복사꽃’의 ‘그늘’이란, 바로 그녀의 슬프고 응어리진 마음을 집약적으로 상징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김하기의 단편 「복사꽃 그 자리」로 들어가 보자. 어느 날, 소설가인 '나'는 출판기념회를 연다. 행사가 끝나고 식사를 하던 중, 어떤 젊은 여자가 찾아온다. 그 여자는 전에 알고 지내던 미스 진의 친구 채미나. 그녀는 미스 진이 자살했다는 충격적 소식을 전한다. 그리고 미스 진의 일기를 ‘나’에게 전해주고 가버린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나’와 자살한 미스 진의 일기 내용이 중심을 이룬다. 동일한 사건의 체험에 대한 작가와 미스 진의 바라보는 시각이 다층적으로 전개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미스 진과 채미나는 부산의 ‘백합장’이란 곳에서 일본 손님을 받는 매춘부들이다. 미스 진은 공장을 다녔는데, 거기서 사장한테 강간당하고, 그로 말미암아 임신을 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임신중절 수술을 한 후, 충동적으로 행동을 하는 등 자폐증의 조짐을 보인다.
‘백합장’에 온 이후 그녀는 이미 한 차례 자살 미수 사건이 있었고, 하루하루의 고통을 마약으로 겨우 견뎌가며 살아가고 있을 정도로 마음이 피폐해져 있는 상태이다. “약기운이 나를 데려가기 위해 계단을 올라온다. 기분을 조절하면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여울물이 달빛에 뒤채는 고향 미사리가 나온다. 은빛 자전거 바큇살이 구르고 가야금 소리가 둥기둥당당 울리는 어린 시절의 고향 마을로 트리핑한다.”
마약으로 현실의 고통을 잊고자 하는 그녀에게, 어머니가 계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복사꽃'의 이미지로 구체화 된다.
'백합관'이라는 곳에서 숙식과 매춘을 하는 그녀는, 어느 날 노모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가깝게 지낸 채미나와 미스 염과 같이 고향으로 내려간다. 셋이서 고향을 가기 위해 기차를 탄 그 안에서, 주인공인 소설가 ‘나’를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대구에 강의가 있어, 부산역에서 열차를 탄 것이다. 화자가 대구에서 내리기 직전, 그녀는 "소설가 아저씨, 난 젊지만요, 제 삶을 쓰면요, 소설의 열 권은 될 거예요."라고 중얼거린다.

어린 시절 엄마는 술집을 하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놀림을 당하고 상처를 받은 그녀는 고향 사람들이 자기를 패션 디자이너로 일하고 다니는 줄 안다. 그녀는 고향에서 오랜만에 마음의 정서를 되찾는다.
“밤에 달빛을 밟고 복숭아나무 그늘이 내린 미사리 개울로 갔다. 한여름 밤 엄마와 함께 미사리 개울에서 멱을 감으면 뼛속까지 시원했다. 난 미사리 개울에서 살이 얼얼하도록 오래오래 멱을 감았다. 골반에 쌓인 더러운 찌꺼기가 죄다 빠져나가는 듯했다. 먹물같이 짙은 고향의 밤을 맞아 오랜만에 마음의 평온을 얻었다.”
이 대목은 현실에 대한 상처와 고향마을의 안온함이 대조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밤, 달빛, 복숭아나무, 개울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고향의 모성적 포근함이 잘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기차 안에서 우연한 ‘만남’이 인연이 되어, 고향에 다녀온 후, 미스 진은 소설가인 '나'를 그 후에도 만나게 된다. 친구인 채미나는 우리들에게 그런 만남은 '상처'뿐이라고 말하며, 말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녀와 싸움까지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스 진은 '나'를 계속 만나게 되고, '나'는 신문에 미스 진의 이야기를 소설에 연재하기 시작한다. '나'는 소설의 자료를 얻기 위해 미스 진이 매춘을 하는 장소인 '백합관'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고스톱도 치고 하면서 그녀들과 어울린다.

어느 날 ‘나’는 신문 연재소설을 통해 백합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이러한 사태에 불만을 가진, 왕년에 소문난 어깨였던 정화위원 K에게 미스 진은 심하게 혼난 후, 그녀는 '나'에게 배반감을 느낀다. 하지만 '나'의 연재소설은 "그 당시 삼 개월에 걸쳐 미스 진의 방 206호실에 머무르면서 은폐된 비밀의 화원을 구석구석 취재"한 덕분으로, 독자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다. 가난한 작가였던 화자는 “한 달에 삼백이면 적은 돈이 아닌데다 연재가 끝나면 단행본으로 출간할 수 있으니” 등단 이후 최고의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그 후 '나'는 연재소설도 끝나고, 가끔 그녀를 만나기도 했지만, 점차 다른 역사소설 연재도 하느라 그녀와의 만남이 뜸해졌다. 그리고 결혼한 이후에는 완전히 끊겼다.
세월이 가고 어느 날, ‘나’의 출판기념회에 '백합관'의 친구인 채미나가 죽은 그녀의 일기장을 갖고 나타난 것이다. ‘

나'는 채미나와 함께 미스 진의 고향으로 간다. 그곳에서 주인공은 그녀의 일기장에 기록된 고향의 분위기를 느낀다.
 “소낙비라도 복사꽃을 흔드는 바람이라도 찾아주었으면, 나비나 잠자리 한 마리라도 날아와 비극적인 삶을 마감한 한 처녀의 귀천을 맞아주었으면 했지만 눈물 같은 복사꽃만 만발해 있었다.”
'나'는 그녀의 고향을 거닐면서, 그녀에 대한 연민과 그리움을 느낀다. 그녀의 일기장의 마지막 부분에는 "선생님, 전 엄마 곁으로 가요. 엄마와 함께 달빛으로 멱 감던 복사꽃 여울로 가요. 약기운이 나를 태워가려고 서서히 올라오나봅니다."라고 적혀있다.
 
이 소설은 여성 캐릭터의 기구한 삶의 하소연 때문에 센티멘탈한 정서가 바탕에 관류하고 있다. 하지만 몸과 영혼의 타락 속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방황과 상처를 사회학적 시각에서 리얼하게 그려나가고 있는 작가의 치열함도 엿보인다.

절망의 늪에 빠진 한 여자에게 소설가인 '나'는 순수한 사랑과 구원의 대상이었다. 그녀가 ‘백합장’에서 보낸 치욕의 생활을 소설화한 ‘나’에겐 작가로서 명성과 돈을 가져다주었지만, 그녀에겐 더 큰 상처와 배반감만 남았다. 인간의 영혼에 감동이나 위안을 주어야 하는 작가인 ‘나’에게 이 점은 치명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약한 한 여자의 감정에 소홀했던 자기 자신을 후회하고 자책한다.

이 작품은 미스 진의 소외된 삶의 고달픈 비애를 그려나간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연약한 개인의 상처를 간과한 채, 대중적 인기와 명성에 연연한 작가의 양심의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사회 비판적인 성격에 머무르지 않고, 물질 만능의 현실 속에서 작가의 윤리적 태도에 대한 기준을 냉정하게 묻는 것이다.
이 글에서 ‘복사꽃’ 이미지는 미스 진에겐 그리운 고향이자 모성으로 요약될 수 있으며, ‘나’에겐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녀’ 자체일 것이다.

 

 

 

 

     

       ▲한상훈 평론가

 

  [약력]
 □ 서울 출생, 1986년 《현대문학》 평론 추천
 □ 평론집 『꽃은 말을 하지 않지만』 『현대소설과 영화의 새로운 지평』 
    『문학의 숲에서 새를 만나다』 『아웃사이더의 시선』 등을 출간하였다.
 □ 한국문인협회, 국제펜 한국본부 회원 hansan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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