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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 시평 (38) 주민현 시인

당대의 사회현실을 고민하는 청년들-『멀리가는 느낌이 좋아』(창비, 2023)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3/10/03 [20:44]

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 시평 (38) 주민현 시인

당대의 사회현실을 고민하는 청년들-『멀리가는 느낌이 좋아』(창비, 2023)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3/10/03 [20:44]

  © 포스트24

 

                    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 시평 (38) 주민현 시인

                  -당대의 사회현실을 고민하는 청년들-『멀리가는 느낌이 좋아』(창비, 2023)

 

 2020년 한 시집에 주목했다. 주민현의 『킬트, 그리고 퀼트』(문학동네, 2020)다. 시인은 시에서 ‘아이슬란드 여성 총파업’을 인유로 보여주고, 또 이국적인 장소인 ‘맨해튼’과 ‘카프리섬’을 시대적 배경으로 제시했다. 이외에도 그녀는 화자의 시점을 통해 ‘동성애 반대’와 ‘낙태 금지’ 등 페미니즘 문제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문제에 대해서도 폭넓게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광범위한 스펙트럼은 세계에 대한 시야를 확장하는 장점은 있어도 통일된 주제를 집중 조명할 수 없어 소재적 차원에 머무를 우려가 있다. 이국의 정황이나 배경을 세밀하게 거론하기에는 현실감이 부족해 독자들이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장르들이 주제적 차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미학과 재현의 정치학을 주로 다루어야 하는데, 이를 잘 인식한 주민현 시인은 각 나라의 지배 집단이 피지배 집단을 종속의 형태로 억압하는 페미니즘 방식을 보여주었다. 이는 피켓식 페미니즘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젠더 폭력에 관한 페미니즘이다. 부드러운 페미니즘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킬트, 그리고 퀼트』는 이전 권위주의 체제보다 여성 능력이 상승한 것에 안주하는 동시대 여성들에게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출간한 『멀리 가는 느낌이 좋아』에서도 그녀는 전지구적 문제를 들고 나왔다. 이 문제는 젠더에 기반한 힘의 불평등 현상을 드러내며, 또한 환경 파괴와 기후의 온난화 현상으로 생긴 동물들의 멸종 현상을 드러내고, 동시대 청년들의 사회 경제적 계층 간의 갈등 또한 보여주고 있다. 이 문제들을 취합해보면, 주제적 차원에서 통일성을 보여주기 보다는 병치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어 소재적 차원에 머무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시인은 독특한 개별 정체성을 가진 청년문화를 담론화하여 연대적 하위문화(대중문화)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것이 강하다. 왜냐하면 시적자아의 인칭이 주관적 개별인칭이 아니라 ‘나와 너’, ‘우리’라는 이웃과 형제애에서 나오는 객관적이면서 공동체적인 의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사회적 문제를 이슈로 끌고 온 시인의 의식은 주체의 욕망보다 대중의 욕망에 가깝고, 동시대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사회체제의 권력과 관련이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시인은 고급문화에 대비되는 하위문화 체계의 속성을 드러내지만 기존의 사회권력집단이 가진 고급문화 체계의 가치를 의심하거나 비판하고 있다. (「도래할 미래」, 「전구의 비밀」,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우산의 용도」, 「희망이 시간을」, 「도토리묵」, 「한강」)

 

      유리가 깨지고 파편이 흩어지고

      그 위로 눈이 섞여 내렸어요 맑은 아침

 

      청소 구역을 정확히 지키는 것이

      우리만의 암묵적인 룰,

      빌딩 청소부로 고용되어 내내 세상을 훔쳐요

 

      십육층 팔층 오층 외로운 사람들의 노래와

      담배 연기를 훔치죠

      거리를 맑게 부수는 햇빛과 사각 창 안에서 눈을 감아요

 

      세상은 부서진 브라운 관이에요. 

      홈비디오 속 푸릇한 아이들은 자라

      도둑과 사냥꾼, 부정한 공무원이 되어가죠

      흥얼흥얼 라디오 음악 속에서

 

      불법 촬영을 하는 시민과 정오의 체포와 

      그리고 어디에선가 총기가 발사되고

      2100년에는 제주의 겨울이 사라진다네요

 

      세상의 이야기가 모이는

      화장실에서는 기분이 좋아요

      부끄러운 것이 빙글빙글 사라지니까요

      우리의 전부였다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들

                                                                          -「도토리묵」 일부분

 

 위 시에서 나온 청소부는 세상을 훔쳐보는 눈을 가졌다. 세상 속에 보이는 대상은 도둑, 사냥꾼, 부정한 공무원 그리고 외로운 사람과 불법 촬영자와 총기를 난사한 범죄자들이다. 이들은 하위문화 체계에 귀속된 사람들로서 권력을 작동하는 중심 집단의 가치를 의심하고 문화적 불만을 표시하는 인물들이다. 환언하면 이들은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 낮은 문화 체계를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하위문화권에 속한다고 해서 모두가 이들처럼 부정성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한계 경험에서 얻은 문화 가치를 예술 형식으로 생산해 대중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노동계급 문화나 코미디 등 대중작품으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현저히 많기 때문이다. 이를 제외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억압받은 문화에 대해 많은 의문을 품고 있다. 하위문화 체계로 인해 문화 가치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이탈된 이들은 열등한 문화에 귀속되어 “외로움을 노래하고 담배를 피우며” 일상적인 경험의 한계에 부딪혀 부정성을 내포하게 된다. 부정성이 쌓이면 관음증자는 “불법 촬영을 ”하고, 범죄자는 “총기를 발사”하고, 환경 오염으로 인해 “2100년에는 제주의 겨울이 사라진다”라고 한다. ‘도토리묵’에 대한 병치은유는 결국 외부 세계에 대한 대립과 갈등의 구조를 보여주는데, 시적 자아는 현실 문화의 다종다양한 부정성 때문에 불성실한 문화 이데올로기를 생산한 이들을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예컨대 “브라운관”으로 상징되는 세상의 이야기를 화장실 변기에 넣고 돌리는 일이다. 수치감과 세계의 환멸 같은 것을 변기 속에 넣고 돌리면 모든 게 사라진다. 시적 자아는 하위문화 체계가 자신들의 전부였지만, 어떤 한계 상황에 놓이게 되면 권력을 쥔 중심 집단에 저항하다가 화장실 속 물처럼 아무것이 아닌 것이 된다고 역설한다. 이 역설은 결국 고급문화 체계가 하위문화 체계에 권력을 작동하게 된다는 의미다.

 

 위의 시를 보면 주민현 시인이 어느 대담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좁은 세상에서 벗어나 다른 공간에서 다른 존재에 귀를 기울여 보며 타인에 대한 이해의 여지를 넓혀”보고 싶다 라고 한다. 그만큼 인간은 계층 간의 경계가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고, 보인다고 그 벽을  쉽게 넘어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일까? 주민현 시인의 시집에 나타나는 큰 주제의식은 지배권력의 폭력에 고통받는 동시대 청년들의 모습이다. (「도래할 미래」) 이러한 이유로 인해 하위문화를 가진 청년들은 공적 집단에 저항하거나 암울한 삶에서 도약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한강」 , 「희망이 시간을」 , 「밤이 검은 건」, 「도전할 미래」) 그 예가 「에리카라는 이름의 나라」이다.

 

      우리에게는 노래하는 유쾌한 모자가 있어

      뉴 노멀의 시대, 뉴 노멀의 시대, 마치

      해피 버스데이 노래처럼 흘러나오고

 

      제2공항 건설로 이 테이블은 대립하고

      이 탁자는 쪼개질 것 같다

 

      해안선을 정치적이고 상업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 <중략> ……

 

      에리카의 뺨이 붉다 해도 희다 해도

 

      에리카는 에리카

      웃고 화내고 격렬하게 우리는 함께

      킥보드를 타고 해안선 멀리까지 나아간다

                                                              -「에리카라는 이름의 나라」 일부분

 

 이 시에서 객관적 상관물은 ‘에리카라는 이름의 나라’다. 에리카는 시적 자아가 “좁은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계를 탈경계화하는 객관적 현상으로 ‘노래하는 모자’를 끌고 온다. ‘모자’는 청년들의 상징이다. 청년들은 ‘뉴노멀 시대’를 노래한다. 뉴노멀시대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떠오르는 청년 문화에 대한 특정 예술 형식”을 의미한다. 청년들은 이젠 자신들의 하위문화를 ‘집합적 ’차원의 문제로 놓았기 때문에 고급문화의 권력을 제1원리로 놓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누구일까, 색색의 우리를 입 안에 넣고 굴리는 자는 우산을 타고 날아가 버려도 좋겠지”(「우산의 용도」)라고 시적 자아가 말하는 데서 그동안 ‘우산’으로 상징된 사회 권력집단의 폭력과 횡포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문화와 이데올로기 간의 차이를 청년들에게 그리 단순하게 보지 말 것을 당부한다. 세계를 둘러싼 모든 광범위한 문화적 산물과 이데올로기를 연결 짓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고급문화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두 부류의 문화적 격차는 대립 관계에 놓이게 되고, 거기에 ‘제2공항’으로 상징되는 글로벌 세계화는 두 부류의 상호화합을 의미하는 테이블이 “쪼개질 것 같다”라고 하는 것에서 갈등을 예고한다. 즉 이 말은 계층 간의 경계와 사회 경제적 계급 간의 경계 해체를 의미하는데, 청년들은 자신들의 하위문화가 고급문화에 비해 하위문화의 우세를 의미하거나. 미래로 한 걸음 나아간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다 먹은 옥수수와 말랑말랑한 마음 같은」) “킥보드를 해안선 멀리까지 나아간다” 다시 말해 시적 자아가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청년들에게 고급문화를 향유하는 사회 경제적 권력문화에 휘둘리지 말고, 그 경계를 빠르게 넘어 탈경계화된 시선의 확장을 보여주자고 하는 것이다. 

 

 현 추세에 따른 청년문화란 각 개성을 중시하는 정체성 표현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주민현 시인은 ‘우리’라는 친밀감으로 동시대의 청년문화를 사회적인 연대로 포괄하자는 의미를 피력하고 있다. 「도토리묵」에서 각각의 젊은이들이 권력에 억압당하고 폭력에 노출되어 부정성과 불법을 저지르는 피지배집단의 삶의 양식을 보여주었다면,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 주체의 본질’에서는 자신들의 하위문화를 제대로 재현시키고자 ‘노래하는 모자’를 만들어 청년문화를 보여주었다. 이 일은 권력의 대항인 고급문화에 대한 저항이고, 전복이며, 가능성에 대한 모색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점에서 주민현 시인은 청년들의 대항문화를 새롭게 구성하고, 기존의 고급문화를 비판적으로 탐색함으로써 문단의 한 위치를 부여받는다. 이외에도 이 시집에서 주목할 주제는 여성을 억압하는 전쟁의 폭력성과 사회적 인식의 불평등에 대한 페미니즘 확장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주민현 시인의 시집.                     © 포스트24

 

 

〚주민현 시인 약력〛

□2017년 한국경제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킬트, 그리고 퀼트』가 있다. 창작동인 ‘켬’으로 활동 중이다.

 

 

 

 

 ▲권영옥 시인, 문학평론가         © 포스트24

 

〚권영옥 시인, 문학평론가 약력〛

 

□아주대 대학원 국어국문과 졸업(문학박사)

□2003『시경』작품활동 시작, 2018『문학과사람』평론 연재

□비평집『한국현대시와 타자윤리 탐구』,『구상 시의 타자윤리 연구』,

평론집『비시간성에 의한 그림자 시학』

□시집『청빛 환상』, 『계란에 그린 삽화』, 『모르는 영역』

□전)상지대, 아주대 외래교수, 문예비평지『창』편집장, 《포스트24》시평 연재

□<두레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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