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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공간의 ‘새’ 이미지 탐색 (24)

-파랑새, 한 상 훈 (문학평론가)

이영자 기자 | 기사입력 2023/09/19 [08:31]

문학공간의 ‘새’ 이미지 탐색 (24)

-파랑새, 한 상 훈 (문학평론가)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3/09/19 [08:31]

                                 문학공간의 ‘새’ 이미지 탐색 (24)

                                           -파랑새

 

 

                                                                                                 한 상 훈 (문학평론가)

 

‘파랑새’는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긍정적 이미지로 문학 속에 주로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까치나 딱따구리의 집을 빼앗아 둥지로 사용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외모나 색을 지닌 조류도 아니다. 몸은 선명한 청록색을 띠고 있으며, ‘케에케켓, 케케케켓’ 하고 무척 요란스럽게 우는 소리를 낸다. 산림이 우거진 절 근처에 잘 서식하고 있다고 해서 ‘승려새’라고도 불린다. 

 

한평생 나병환자로 고통스럽게 살아온 한하운(1920~1975)의 시 <파랑새>를 감상해 보기로 하자. 한하운은 함경남도 함주에서 선비 집안의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태영(泰永)이다. 하운(何雲)이란 이름은 자신의 삶을 정처 없이 ‘떠도는 구름’에 빗댄 것이다. 그는 17세에 경성대 부속병원에서 한센병 진단 확정을 받는다. 중국 베이징대학 농학원을 나와서 경기 도청에 근무하면서 밝은 미래를 꿈꾸다가, 나병의 재발로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가서 치료하다가 1948년도에 월남한다.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한하운, <파랑새> 전문

 

이 시는 1949년도에 정음사에서 간행된 첫 시집 <한하운 시초>에 실려 있는 26편 중의 하나이다. 이 시집 책머리에는 지은이의 필적과 나병으로 손가락이 짤린 수인(手印)이 찍혀있다. 

<파랑새>는 전체 4연으로 이루어진 자유시로, 시인은 죽어서나마 나병의 질곡에서 벗어나기를 소망한다. 그러한 절실함은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라는 구절에서 짙게 묻어나고 있다. 

김소월 시인의 <접동새>나 ‘쑥국새 설화’처럼, 맺힌 한 때문에 죽어서 ‘새’가 되는 이야기가, <파랑새>에서도 그대로 시의 바탕에 관류하고 있다. 

이 시는 시인이 나병 수용소에 있었거나 그곳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다. 세상 사람들과 유리되어 떠돌아 살아야만 했던 시인의 기나긴 인생의 내적 방황, 그 자체가 억압의 삶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사슬과 같은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에 대한 소망을 ‘파랑새’에 빗대면서, 한하운은 우울하게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2연의 “푸른 하늘/ 푸른 들”은 파랑새가 날아다니는 자유로운 공간이지만, 3연의 “푸른 노래/ 푸른 울음”은 시인의 슬픔과 한, 울음을 함축하고 있다. 인간의 우울이나 슬픔을 드러내는 푸른색의 색조가 시의 전체를 지배하고 있으며, 시인이 살아왔던 쓰라린 삶의 궤적을 느끼게 한다.  

시인 한하운은 ‘소록도로 가는 길’이라는 부제가 붙은 <전라도 길>에서는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하나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없어질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이라고 했다. 문둥이라는 '천형(天刑)'을 한평생 짊어지고 살았던 그의 무겁고 고통스러웠던 시간의 나날을 조용히 생각해 보면 가슴이 먹먹해지지 않을 수 없다. 

참고적으로, 우리 문학에서 ‘문둥이’를 소재로 한 주요 작품들을 살펴보면,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는 서정주의 초기 시 <문둥이>를 손꼽을 수 있으며. 소설로는 나병환자를 소재로 창작된 김동리의 단편 <바위>와 이청준의 장편 <당신들의 천국> 등을 거론할 수 있겠다.

  

다음은 <춘향전>과 같은 계열의 염정소설인 우리의 고전 <숙영낭자전>으로 들어가 보자.

 

<숙영낭자전>은 작자 연대 미상의 애정소설로 조선 후기 유교적인 사회구조가 절대적인 시기에 부부의 정신적, 육체적 사랑을 정면으로 다룬 파격적 소설이다. 도교적인 사상을 바탕으로 환상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이 소설은 주인공 선군이 과거 시험을 보러 간 사이에 아내인 숙영낭자는 시아버지인 백공으로부터 정절을 의심받는다. 

그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선군을 남몰래 사랑하던 시비인 매월은 간계를 꾸며 숙영낭자가 다른 남자와 밀회를 하고 있다고 고발한다. 결국 숙영낭자는 이러한 사실에 대한 원통함을 견디지 못하고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가슴에 칼을 꽂고 자결을 한다. 그런데 그 칼을 아무도 뺄 수가 없는 이상한 일이 발생하고, 남편인 선군은 돌아와 이 사실을 알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

 

(A) “도련님이 저를 생각하고 이처럼 병이 드셨으니 저로서는 오직 감격할 따름입니다. 저와의 연분은 아직 때가 멀었으매, 그동안 저 대신으로 도련님댁의 시녀 매월이 도련님을 모시고 시중들기에 부족하지 않을 것이오니 아직 방수를 정하여 저를 보는 듯이 적막한 심회를 위로하십시오.”

하였다. 깨고 보니 한마당 꿈이었다. 선군이 마지 못하여 낭자의 말대로 매월이를 시첩으로 삼아서 울회를 풀기는 하되, 일편단심의 애정은 여전히 낭자에게 있을 뿐이었다. 달 밝은 빈산에서 내는 원숭이의 휘파람 소리와 두견새의 불여귀가 슬피 우는 소리에도, 낭자의 생각으로 간장이 굽이굽이 녹는 듯 하였다.

 

(B) 선군이 이 말을 듣고 넋을 잃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잠잠히 있다가 다시 낭자의 빈소로 들어가 대성통곡하였다. 그 뜰에 꿇어 앉히고 보니, 그중에 매월이도 끼어 있었다. 선군이 소매를 걷고 빈소로 들어가서 이불을 벗기고 보니, 낭자의 용모와 전신이 완연히 산 사람 같고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선군이 부축하여 올리고,

“이제 내가 왔으니, 가슴에 박힌 칼이 빠지면 그 칼로 원수를 갚아 낭자의 원혼을 위로하겠다.”

하고 칼을 잡아 빼니, 그 칼이 가볍게 쑥 빠졌다. 그와 동시에 그 구멍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나오며,

  “매월이다, 매월이다, 매월이다.”

하고 세 번 울고 날아갔다. 그제야 선군이 매월의 소행인 줄 알고, 분격하여 당에 나와 형구를 갖춰 놓고 모든 비복을 차례로 장문하였다.

-<숙영낭자전>에서

 

(A) 글은 주인공 선군이 숙영 낭자를 사모하는 마음이 너무나 간절하여 꿈에서도 그녀가 보이는 장면이다. 꿈에 나타난 그녀는 남편인 선군의 사랑에 감격하면서, 외로워하는 그를 따뜻하게 위로하고 있다. 선군은 꿈에서 깨어나니 쓸쓸함에 삶의 공허함을 느낀다. 글 마지막 부분에, 두견새의 울음소리는 주인공 선군의 숙영에 대한 그리움과 그로 인한 외로움의 내적 심리를 고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B) 글은 남편 선군이 장원급제하고 돌아와 아내인 숙영남자의 죽음에 대해 비통한 마음을 갖고 죽게 된 원인을 풀어나가는 장면이다. 여기서 숙영낭자의 불륜에 대한 의혹을 풀어주는 결정적 역할을 ‘파랑새’가 하게 된다. 

즉, 아무도 숙영낭자의 가슴에 꽂인 칼을 빼지 못하는 상황에서, 남편 선군이 그 칼을 뽑게 되고, 그 순간 숙영낭자의 가슴에 꽂혀있던 그 칼이 빠진 자리에서 ‘파랑새’가 튀어 나온다. 그 파랑새가 세 번이나 ‘매월이다’라고 소리지르며 날아가는 장면은 독자들에게 환상적이면서 경이로운 느낌을 준다. 

요컨대, 매월이의 음모로 인해 숙영낭자가 억울하게 한을 품고 죽게 되었음을 ‘파랑새’가 밝히고 있는 대목이다. 

 

 

  ▲한상훈 문학평론가.                          © 포스트24



<약력>

서울 출생, 1986년 《현대문학》 평론 추천 

평론집 『꽃은 말을 하지 않지만』 『현대소설과 영화의 새로운 지평』

『문학의 숲에서 새를 만나다』 『아웃사이더의 시선』 등을 출간하였다.

경기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국제펜 한국본부 회원 hansan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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