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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시평(3)

'채송화' 권혁재 시인

이지우 기자 | 기사입력 2020/06/15 [23:15]

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시평(3)

'채송화' 권혁재 시인

이지우 기자 | 입력 : 2020/06/15 [23:15]

  © 포스트24

 

                                          채송화

 

                                                    권혁재 시인: 경기도 평택 출생, 2004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투명인간』, 『안경을 흘리다』외. 저서 『이기적 시와 이기적  시론』

                                                                등이 있다

 

 

한 줄기가 꺽여나가면
금세 표가 날 것 같아
서로 이마를 맞대고 서 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울음을 어깨로 받으며
한국 법원 마당까지 이주해 와서
남편 앞에 낮게 핀 꽃,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과
억울해하는 낯빛에서
눈동자가 더 작아지는 태국산 꽃,

키가 조금만 더 컸더라도
법원 담장 너머로 가려진
약아 빠른 꽃들의 물정을
눈치챌 수 있었을까.


        - 「채송화」 전문

 

권혁재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 『당신에게는 이르지 못했다』, 이 시집에서 필자는 「채송화」를 건져 올렸다. 시에서 열거하지는 않았지만 미루어 짐작해보면, 시적대상인 결혼이민자 여성은 언어와 문화 부적응 현상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인 배우자는 외국인 아내에 대한 문화 이해도가 부족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결과 문화의 상이성은 대개 부부간의 관계망 속에서 숨겨진 갈등 양상을 드러낸다.


가족 중심부에 닿지 못하는 사람에게 소외란 얼마나 큰 고립인가. 소외된 채송화로 상정된 꽃은 태국 결혼이민자 여성이다. 화려한 여성들 속에 키 낮고 가녀린 그녀는 한과 슬픔을 지니고 있다. 특히 이민족 여성이기에 타인의 시선을 받지 못할뿐더러, 문화적인 면에서나 언어적인 면에서도 타인들과 소통하기 힘들다.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는 시인의 의식은 꺾이기 쉬운 채송화 한 줄기에 마음을 투사한다. 비록 담론화 하지 않아도 시인의 의식이 그녀에게 투사할 정도면, 그녀는 배우자에 대한 배출할 수 없는 배신과 슬픔의 심리가 마음속 저변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예시가 “울음을 어깨로 받으며”, “남편 앞에 낮게 핀 꽃”으로 나타난다. 결혼이민자로서의 그녀는 가부장제가 정한 규정에 저항 한번 하지 못하고, 오히려 배우자를 향해 화해와 융화를 청하며 고립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하지만 그녀는 배우자로부터 청을 거부당하고, “한국 법원 마당까지 이주”해오게 되는 불명예를 안는다.


이때 시인의 투사는 결혼이민자 여성끼리 “서로 이마를 맞대고 서 있게” 하는 것이지만 그녀가 “한국 법원 마당까지 이주해“ 온 걸로 봐서, 이미 이혼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결국 시인의 투사는 실패하고 만다. (「빈 발걸음」) 다시 시인은 그녀의 고통에 공감하면서 외적 투사 못지않게 시인의 감각과 의식을 안으로 투사한다. 이때 투사는 자신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게 된다.

 

그 매개가 법원 담장을 넘을 수 있는 ‘키’다. 시인은 안으로의 투사를 위해 일차적으로 ‘연민’을 드러낸다. 그녀가 “억울한 낯빛”을 취하면서 작은 눈동자를 굴리기 때문이다. 결혼이민자로서 그녀는 토착 사회구조의 지배질서에 대항할 수 없고, 억압에 대해서도 제기할 수도 없다. 더욱이 배우자와의 가치관의 갈등으로 눈동자가 더 작아진다. 여기에서 ‘낮게 핀 꽃’, ‘키 작은’이 암시하는 것은 그녀가 한국 사회의 중심주체가 아니라는 뜻에서 동화보다는 이질성에 가깝다.


시인은 2차적으로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그녀가 “시인의 절대적 영향권에 있는 특별한 개인”(「치앙마이의 달」)이기에, 그 진실성은 그녀의 삶에 더 닿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한국사회의 ‘물정’을 모른다. 이와 달리 “약아 빠른 꽃들”은 ‘물정’에 빠르다. 그 결과 배우자는 “약아 빠른 꽃들”에게로 변심하게 된다. 시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불행도 간과하지 않는 ‘약아 빠른 꽃들’에 대해 비판 의식을 드러낸다. 동시에 시인은 자신의 박애와 선성이 이들에게 완전하게 닿지 못하자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안개를 부치다」, 「고독의 한쪽」) 이 과정을 거쳐 시인은 성찰의 정점인, 즉 “배고픈 밥들은 서로의 밥을 위로하며 무릎을 맞대고 먹는” 한 존재로 이 여성을 세우게 된 것이다. (「밥들」) 「채송화」를 통해서 보면 권혁재 시인은 어느 민족이든 어느 한 개인이든 차별지를 없애고 모두 공평하게 대하고 있다. 그 점에서 우리는 그의 균형 잡힌 시각과 시정신을 엿볼 수 있다.

 

 


  

  
   ▲권영옥 문학평론가

 
 [권영옥 약력: 시인, 문학평론가]
 
□ 경북 안동 출생, 아주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 졸업(문학박사)
 □ 시론서 『한국현대시와 타자윤리 탐구』, 『구상 시의 타자윤리 연구』.

 □시집 『청빛 환상』, 『계란에 그린 삽화』 (경기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 아주대 외래교수, 현재 《두레문학》편집인, 문예비평지 『창』편집위원, <두레문학상>수상.

 □ 이메일 :  dlagkwn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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