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조각은 암자 위에서 부서지고

이우중 소설가, 수필 읽기(2)

이지우 기자 | 기사입력 2020/06/01 [08:28]

달빛 조각은 암자 위에서 부서지고

이우중 소설가, 수필 읽기(2)

이지우 기자 | 입력 : 2020/06/01 [08:28]

                                              달빛 조각은 암자 위에서 부서지고 


                                                                                                             이 우 중 소설가

 

어릴 때 어머니는 집안 대소사가 있거나 힘들면 길흉화복을 점치러 가끔 마을 뒤 산 중턱 암자에 있는 보살을 찾았다.
한여름 암자에 다녀온 다음 날 어머니는 굳은 표정을 짓더니, 가족이 한 푼도 써보지 못한 차용증도 없는 아버지 노름빚은 못 갚는다며 “배를 째려면 째라.”라고 마을에 선언했다. 가족들 먹고 살기도 어려운 살림에 노름빚은 절대 못 갚는다는 것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빚쟁이들이 우리 집에 쳐들어와 안방에 드러누워 행패를 부렸다. 어머니가 외가로 잠적하자 빚쟁이들이 돌아갔다. 
그리고 며칠 후 노름빚 문제로 아버지와 크게 다투신 어머니가 저녁 식사 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걱정이 되어 어머니를 찾으러 마을을 몇 바퀴 돌아다녀 보았지만, 어머니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마을 앞 큰길로 나섰다.


 ‘그래, 어머니는 오늘도 암자에 가셨겠지. 얼마나 속이 상하셨으면….’ 나는 무서워 산 중턱 암자에 갈 엄두를 못 내고 머뭇거리고 있는데 칠흑 같은 어둠이 밀려오고 멀리 암자에서 나오는 작았던 불빛은 더욱 커졌다. 암자에서 나오는 불빛을 원망스럽게 바라보던 그때 마을 끝에 사는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가 반갑기도 하고 어머니를 찾으러 암자에 가지 않아도 될 핑계거리라도 잡은 것처럼 물고 늘어져 마을 끝 외진 곳에 있는 그의 집으로 갔다. 친구와 늦게까지 이야기를 하다 자정이 다 되어 집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왔다. 어두컴컴한 밤 무섭기도 하고 겁이 나서 조심조심 걷고 있는데 몇 년 전 어머니가 야산을 개간해 만든 밭이 있는 방향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서워 샛길 옆 숲으로 빠르게 그리고 조용히 앉으며 몸을 숨겼다.


달빛 아래 소가 옥수수를 뜯어 먹는 형상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우리 집 소가 외양간을 뛰쳐나와서 옥수수를 뜯어 먹는 일은 자주 있던 일은 아니었다. 작년 여름 내가 초등학교 6학년 오후반 수업을 끝내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 왔을 때였다. 식구들이 모두 논에 일하러 나간 사이 외양간에 있던 소가 배가 고팠는지 고삐를 풀고 밭으로 뛰어들어 옥수수 열매와 잎사귀를 마구 뜯어 먹고 옥수수밭을 절단 낸 적이 있었는데 그런 모습과 비슷했다. 한밤중에 소가 뛰쳐나왔다면 큰일이다. 소가 아니라면 귀신이나 도깨비인가? 무섭고 긴장한 탓에 귀신, 도깨비 그런 단어들이 머릿속을 들락날락했다.


산 밑에 밭이 있고 그 아래 비탈진 오솔길은 풀이 무성해서 길과 숲이 분간이 안 되었다. 급한 마음에 여기저기를 허둥대며 오리걸음으로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몇 번 하자 눈앞에 도깨비불이 날아다녔다. 
나는 반사적으로 산 중턱 암자를 쳐다보았다. 암자의 불빛은 꺼져있었다. 그렇다면 어머니가 암자를 내려왔거나 암자에 가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만약 어머니가 암자에 가지 않았다면? 우리 집 농사 일 년 치 수확한 벼만큼을 몇 년에 걸쳐서 빚쟁이들한테 돌려주느니 어머니는 야밤에 도주 해버린 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나는 생각했다. 어머니는 더는 세월을 기다릴 수 없었는지 모른다. 아버지가 놀음에 빠져서 농사일을 돌보지 않을 때 어머니가 대신 농사일의 선두에 나서면서 할머니를 비롯한 우리 식구들을 닦달해서 논밭으로 내몰았고, 자식들과 살아보려고 애를 쓰다가 이제 한계를 느낀 거야. 아버지와 크게 다툰 오늘 결국은 일을 벌인 것이 확실해! 거기에 마을 뒤 암자에 있는 미래 길흉화복을 족집게처럼 잘 보는 보살이 어머니한테 일단은 도망치라고 사주(使嗾)했을 수도 있어, 나는 절망했다. 눈물이 흘러내리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대로 주저앉아 눈을 감았다. 


우리 집도 이제 어쩔 수 없이 야반도주를 결행해야 할까

몇 년 전 겨울밤, 아버지가 일확천금을 노리고 노름방에서 늦게까지 오지 않고 식구들이 모두 잠든 시각, 사랑방에서 등잔불을 켜놓고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광에 들락거리면서 무언가를 숨기는 것 같았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다음날 광에 들어가 확인해 보았다. 
광에는 세 개의 큰 독이 있었는데, 첫 번째 독과 두 번째 독에는 초겨울 담근 김치가 그대로 있었고. 세 번째 마지막 독 뚜껑을 열자 독 안에는 이불 만드는 데 사용하는 큰 투박한 광목을 몇 번 접어서 네모 반 듯하게 속 뚜껑으로 덮여 있었다. 그리고 접힌 광목 속 뚜껑 아래에는 어머니가 시집올 때 가져온 듯한 조그만 금반지 은비녀 등 초라하고 볼품없는 패물과 약간의 지폐가 있었으며 또한 비상식량인지 종자 씨인지 모를 옥수수와 감자 조 등도 독에 감추어져 있었다.

 

모든 일들이 어머니의 최후 수단으로 치밀하고 철저한 계획하에 진행되고 있었던 거야. 나의 확신은 흔들리지 않았다. 
며칠 전 어머니가 아버지의 노름빚을 못 갚겠다고 선언하고 빚쟁이들을 피해 외가 쪽으로 도피한 것은 오늘 같은 날을 대비해서 예행연습을 한 것이나 다름이 없어. 그때도 어머니 행동이 조금은 이상 했었는데, 이미 어머니는 오랫동안 대대로 지켜온 고향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게 분명해, 이렇게 치밀하게 오랜 시간을 두고 준비하는 것을 아무도 눈치를 못 채다니! 어머니를 말렸어야 하는데, 우리 집 노름빚과 자식들 먹여 살리는 문제,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최후의 준비된 방법은 자식들은 버리고 떠나면 된다고 어머니는 생각 한거야. 초강수를 어머니가 둔 거야. 내가 생각해도 다른 방법이 보이지를 않았으니까.


우리 집은 앞이 보이지 않았고 혼돈의 연속이었고 공허했어. 나는 절규했다. 그래도 어머니를 잡았어야 하는데…….이제 늦었어! 너무 늦었어! 나는 절망과 공포 회한에 몸을 떨며 울부짖었다.
오늘 어머니는 결국은 그동안 준비한 최후의 선택에 종지부를 찍은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모든 일에 주도면밀했어!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어머니는 끝이 보이지 않은 지긋지긋한 가난에 끝장을 보고 싶어 했던 거야. 어머니가 이미 도주를 선택 하였고 이제 남은 가족들도 어머니처럼 도주해야 한다. 도주 이외에 다른 여지가 없다고 생각되자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엎드린 상태에서 오른손과 왼쪽 손을 움직여가며 양쪽무릎을 끌어내렸다. 눈앞에 작은 별들이 수없이 번쩍거렸다. 이마가 찢어졌는지 이마에서 액체가 눈 아래로 흐르다가 코로 들어갔다. 발을 헛디뎌 머리를 부딪치고 넘어지기를 여러 번, 다시 풀숲을 헤치며 엉금엉금 기어서 집을 향해 내려갔다.


어머니는 우리 가족을 버리고 도망친 게 확실해, 지난 주 빚쟁이들을 피해서 외가로 잠적한 것처럼. 어머니에 대한 약간의 믿음과 의혹이 맞부딪치면서 내 마음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어머니가 혼자 도망쳤을 상상에 이르자 몸이 부르르 떨리고 한여름인데도 이가 덜덜 부딪치면서 오한이 일어났다.  


다른 식구들도 가난과 빚쟁이들을 피해서 이제 어둠이 걷히고 해가 뜨기 전 고향을 떠나야 한다. 우리 집은 이제 끝장났어! 넝쿨이 얼굴을 긁었다. 따가운 산딸기 넝쿨을 손으로 잡아채자 손이 바늘에 찔린 듯 따끔따끔했지만 그것은 큰 고통은 아니었다. 아무리 어머니를 이해한다고 해도 자식들을 버린 어머니의 배신에 진저리가 쳐지고 치가 떨렸다. 나도 오기가 생겼다. 이빨에 힘을 주어 악 다물고 다시 눈을 떴다. 나는 외쳤다.


‘빨리 가야 한다.’
자꾸 흘러내리는 이마의 피와 눈물을 손으로 닦으면서 내 행동을 견고하게 확정하기 위해 시선을 집과 옥수수 밭쪽으로 돌렸다.
그때였다. 밭 한가운데 키 큰 옥수수 나무가 차례대로 흔들렸다. 늘어진 옥수수 잎사귀 사이를 오가는 달빛에 얼룩진 그림자가 옥수수 나무를 흔들고 보름달만한 광주리에 옥수수를 따서 담고 있는 어머니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 그래 어머니야!’ 나는 조용히 외쳤다. 
어머니는 달과 같은 큰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있었으며, 왼손잡이였던 어머니 왼손이 능숙하게 옥수수 열매를 따서 머리에 인 광주리에 올렸다.
 
하늘에는 온통 노랗고 하얀 옥수수 가루로 뿌려 놓은 듯한 은하수가 가득했고 옥수수가루가 뭉쳐서 만들어 진 듯한 작은 별들이 어머니 옥수수 광주리에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마을 뒷산을 쳐다보니 푸른 하늘은 산등성이에 걸쳐있었으며, 산 중턱 암자위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달빛이 조각으로 부서지고 있었다.

 

 

 

  

   ▲이우중 소설가

 

 

  〔약력〕

 □ 1997년 KT 문예대상 금상 수상, 2015년 경기도문학상

 □ 2018년에는 KBS와 고용노동부주관 40년 전통의 제39회 근로자 문학상 수상
 □ 2010년 장편소설『신은 한국을 선택했다』외 4권 출판 
 □ 현) 한국문인협회, 한국산문작가회의,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

 □  http://cafe.naver.com/emlee02     E-mail : emlee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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