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본을 뜨다

오늘의 추천 시인. 정인선 시인

이지우 기자 | 기사입력 2020/05/15 [09:08]

탁본을 뜨다

오늘의 추천 시인. 정인선 시인

이지우 기자 | 입력 : 2020/05/15 [09:08]

 

 사진 = 정인선                                                                                              © 포스트24


 

 

탁본을 뜨다

 

 

                                                                                    정인선 시인

 

겨울 철새들이 철원평야에서 서사시를 쓰다가
떠났다
문장으로 남아있는 논틀과 바닥에
먹이로 던져준 낱 알갱이들을
쉼표와 느낌표로 남겨놓고
그들은 떠나가면서 하늘에는
무엇을 남겼을까
제 발자국쯤은 문진으로 새겨뒀겠다
강이나 바다에도
탁본을 해둔 발자국들은 있겠지만
이제는 출렁이면서 자음과 모음으로 흩어졌겠다
가슴이 아프다는 소식과
보고 싶다는 이야기는 밀봉이 되어있을 거다
먹을 물조차 귀해진 가뭄으로
아랫배를 들어낸 외진 골짝의 개울바닥에
아픔이라고 썼는데
혼자 두면 외로울 것 같아
고독도 곁에 두었다
마른 바닥에 깊게 써놓았으니
다시 개울물이 찾아와도 지켜내겠지
먼 훗날
오늘을 찾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어둠이 쌓여들어 화석이 되는 날이 오면
상형문자 발견이라고 떠들썩하려나
모두들 다녀가며
개울도 아팠다고 고독했다고 읽어낼까
공룡의 발자국
새들의 족적도 유적지로 남겼있으니
어쩌다가
그렇게 읽혀지기는 하겠다

 

 

 

 

 

 

 

     

 ▲정인선 시인

 

[약력]
□ 삼척 출생.
□ 2008년 『문파문학』 등단.
□ 시집 : 『잠깐 다녀올게』, 『거기』, 『오른쪽이 무너졌어』
□ E-mail : jslor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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