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배영 시인
늙은 목수의 허리춤에 달팽이 한 마리 매달려 있다 이쪽을 저쪽에게 묻는 일 혹은 저쪽을 이쪽과 연결할 때 달팽이는 제 몸을 늘이고 또 빠르게 접는다 그 몸속에는 평생 자신이 재며 가야할 거리가 들어있다
목수는 딱 정오를 재고 그곳에 앉아 담배 한 개비의 시간 참을 골몰한다 한 마리의 달팽이로 평생 내 집을 잰 기억이 없다는 헛헛함과 세상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집 한 칸을 위해 지구의 곳곳을 재고 또 재는 상상을 하는 것이다
아침을 재고 언젠가 입주할 저녁의 목관을 재는 것이다 만물의 시작과 끝, 그 사이를 천천히 걷는 달팽이 이상한 것은 자신이 잰 길을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다시 거둬들인다는 것이다 눈금 눈금마다 걸었던 길을 반추하듯 되감는다는 것이다
▲ 배영 시인
[약력 ] □ 고려대 법대 졸업 □ 2014년 시 현실 등단 □ 2016년 매일 시니어 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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