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 시평(2)

「알바노보호구역」

이지우 기자 | 기사입력 2020/05/12 [20:11]

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 시평(2)

「알바노보호구역」

이지우 기자 | 입력 : 2020/05/12 [20:11]

                                              

  © 포스트24

 

 

                                                     알비노보호구역
                                                     


                                                                   조정인 시인: 《창작과 비평》 등단. 시집 『그리움이라는 짐승이 사는 움막』,

                                                                                     『사과 얼마예요』 등, 제14회 지리산문학상 수상.

 

물의 혼령들이 어슬렁거리는 새벽 나는 나에게서 유실되어 둑길을 흘러갔다

 

 대기가 팽창했다 분사된 젖의 미립자, 안개 너머에서 폐활량을 키우는 저수지 심박소리가 들려왔다 젖의 유충이 눈썹과 머리칼, 귓바퀴와 목덜미를 하얗게 더듬어왔다

 

 안개는 천 겹 베일을 둘러주며 입속말을 흘렸다 나는 너의 애초의 입자 너의 정직한 총체,

너를 바라보는 텅 빈 눈동자…

 

 안개구역에는 귀가 순한 알비노들이 모여 살았다 목소리를 삼킨, 흰 속눈썹 아래 지워진 눈동자 그들은 서로의 눈과 귀를 핥고 서로를 먹였다 에돌고 흐르는 무리 거기서는 누구도 이방인이 아니다

 

 베일을 풀며 안개가 쓸려가고 발등이 드러났다 백색교의 창백한 수도승처럼 자작나무가 도열해 있는 아파트 뒷길 연금술이 사라진 곳에 식은 태양 몇 닢 버석거렸다

 

 흩어진 신전에 관한 풍문
 
 내 혈관에는 안개포자가 서식중이다 나는 안개주의자 안개에 편향적이며 안개에 위독하다 안개에 몰입한다 어느 날 나는 알비노에 편입될 것이다

 

                                                                             시집 『사과 얼마에요』(2019. 민음사) 수록
                                           

      
우리는 흔히 일상적인 모습과 다른 초자연적인 것을 대했을 때 ‘와아, 환상적이다’라고 말한다. 환상은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이야기, 물질, 사물이 괴기스럽게 보이거나 경이롭게 보여 마치 백일몽을 꾸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이유경의 『밀알의 영가』를 보면, 1960년대 자본주의 산업화로 인한 부의 편재현상이 일어나 시인은 환상시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 시인들이 환상시를 쓰는 것은 자연과 초자연의 충돌현상에서 오는 망설임보다는, 부조리한 현실 질서를 전복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이는 시인이 무의식적 소원의 경험인 현실과 상상하는 장면 사이에서 일어나는 환상을 통해 소망욕구를 충족하고 싶은 것이다. 특히, 시에서의 상상 장면은 무의식의 방어기제에 의해 과장되거나, 왜곡된 것이 환상 방식으로 표출된다. 그런데 모든 시를 다 환상이라는 이름으로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환상은 어떤 사건이나 이야기가 지배적이어야 하고 주인공이 계속 재등장하고 재가공 될 수 있는 요지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는 이야기, 사건, 사고의 정황이 지배적일 때만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조정인 시에서의 ‘환상성’은 어떠한가? 그의 『사과 얼마예요』 에서 시 몇 편은 사건과 스토리가 지배적이고, 촉발점과 해체지점이 환상시 요건에 부합된다. (「무성한 북쪽」, 「서쪽」, 「알비노보호구역」) 그의 시에서 환상성은 사물이나 자연물이 일렁이거나, 흐르거나, 아른거리는 것에서 일어난다. 「알비노보호구역」에서 환상의 촉발점은 물의 혼령이 어슬렁거리는 안개 속에서 일어나는데, 시인이 선잠에서 깬 새벽, “나는 나에게서 유실되어 둑길을 흘러갔다.”라고 한다. 이때, 시인은 현실에서 벗어나 무의식 상태에 놓여 있다. 귓속으로 “저수지 심박소리가” 들려오고, “젖의 유충이 눈썹과 머리칼, 귓바퀴와 목덜미를 하얗게” 더듬는다. 이는 저수지(모성성)의 젖가슴에서 분사된 젖의 미립자가 시인의 얼굴 위쪽을 감싸 안는 듯하다. 이러한 느낌은, 시인 마치 어머니와 함께했던 유아기의 근원적 경험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소망욕구 같은 것이다. ‘안개의 미립자’와 ‘분사된 젖의 미립자’를 시인은 ‘희뿌연 기체’, 즉 모성성과 동일시한다. 라플랑쉬에 의하면 유아는 “실제적 보호대상이 부재할 때” 원초적 만족의 경험을 환상적인 형태의 경험으로 욕구를 충족하고자 한다. 결국 이 시에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환상의 무대는 ‘알비노보호구역’이고, 소망욕구 대상은 ‘젖의 미립자’로 치환된 ‘알비노인’들이다.


시인이 알비노인을 소망욕구 대상으로 생각한 이유는, 모성성처럼 “서로의 눈과 귀를 핥고 서로를 먹이고”/ “에돌고 흐르는 무리 거기서는 누구도 이방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후 시인은 안개의 베일이 풀어지는 순간 환상에서 벗어난다. 그가 의식 상태로 돌아왔을 때, 그 지점에는 “자작나무 위로/식은 태양 몇 닢이 버석거렸다.” 이 시행을 통해서 보면 시인은 환상에서 벗어나도 여전히 알비노인들에 대한 연민이 남아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거기서는 누구도 이방인이” 아니라고 하는 점에서 문제의식이 있다.


지금까지 시인은 주체중심의 시를 쓰기보다, 사회공동체적이고, 타자윤리적인 타자중심의 시를 써왔다.(「무성한 북쪽」,「내 잠속에 기숙하는 자」,「개의 영혼을 보았다」 등) 시인의 시적 대상으로는 힘없는 고양이, 빈곤한 사람들과 실패한 사람들, 사회의 이방인이 주류를 이룬다. 타자중심의 시를 쓰는 시인에게 혹자들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 사회 일각의 사람들 행동을 보면 평등함과 거리가 멀다. 사회 구성원들끼리도 계층 간 자산의 양극화와 소득의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고, 비슷한 계층끼리만 어울리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부 사람들은 자연 도태되고 소외될 수밖에 없다. 이를 본 시인은 사회 계층 간의 갈등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고 인식한다. 이러한 비합리적이고 모순적인 양극화 구조에 대해 시인은 환상시를 통해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인이 사회의 강력한 권력 앞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 “안개에 몰입하고/ 알비노에 편입”해야 한다. 시인은 「알비노보호구역」 을 시발점으로 해서 이 시대 강력한 집단에 짓밟히는 힘없는 타자를 위해(「유리, 혹은 유리」, 「블랙스완」),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낮에 산 패딩을 입어 보았다」) 견인차 역할을 다하고 있다.
 

 

 

 

  
   ▲권영옥 문학평론가

 
 [권영옥 약력: 시인, 문학평론가]
 
□ 경북 안동 출생, 아주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 졸업(문학박사)
 □ 시론서 『한국현대시와 타자윤리 탐구』, 『구상 시의 타자윤리 연구』.

 □시집 『청빛 환상』, 『계란에 그린 삽화』 (경기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 아주대 외래교수, 현재 《시인뉴스》편집위원, 문예비평지 『창』편집위원, <두레문학상>수상.

 □ 이메일 :  dlagkwn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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