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주성 소설가의 어버이날 특집 『회방연』

60년 벼슬한 송순에게 선조대왕이 열어준 연회

이지우 기자 | 기사입력 2020/05/08 [18:49]

송주성 소설가의 어버이날 특집 『회방연』

60년 벼슬한 송순에게 선조대왕이 열어준 연회

이지우 기자 | 입력 : 2020/05/08 [18:49]

 〔단편소설〕                                               『회방연』

 

                                                                                                             송주성 소설가

 

임금이 전교를 내렸다.

 “면앙정 송순의 나이 87세가 되었고 1519년 사마시에 급제하였으므로 올해로 벼슬에 오른 지 60년이 되어 회방을 맞이하였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고 땅을 내려다봐도 부끄러울 것 없는 진정한 조선의 선비이다. 조선 건국 187년 만에 처음 있는 회방연이며 성종대왕, 연산군, 중종대왕. 인종대왕, 명종대왕 그리고 짐까지 여섯 왕을 섬긴 백성이고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치며 조정을 보필한 충신이다. 나이와 덕이 높고 강녕함을 유지하였으니 크게 소리 내어 칭송할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나이와 지위가 조선의 최고에 이르렀으니 성대한 의식을 베풀어 원로를 존대하는 것이 마땅하다. 송순의 생일 11월 14일을 회방일로 정하여 궤장, 도포와 모자 그리고 꽃을 내리고 옷감과 연회에 필요한 물품을 호조로 하여금 전라도 담양으로 수송하게 하라. 또한 승지를 보내 선온하고 1등악을 보내 조선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회방연을 성대하게 빛나게 하라.”

 

선조대왕의 송순 회방전례 하교를 받은 대신들은 바삐 움직였다. 전라도 담양까지는 밤낮으로 쉬지 않고 걸어도 7일이 걸리고 궁중정재를 사악으로 펼칠 장악원의 악공과 무동, 기녀까지 담양으로 가는 길은 서둘러도 10일은 족히 걸리는 먼거리였다.
예조에서는 먼저 담양 관아로 파발마를 보냈다. 송순은 회방연의 궤장과 홍패를 면앙정에서 받겠다는 뜻을 담양부사에게 전달했다. 예조는 궤장과 홍패를 14일까지 면앙정으로 보낼 준비를 마쳤다.
호조에서는 하교를 받은 즉시 회방연 연회에 쓸 비용과 물품을 보낼 준비를 했다. 정랑은 쌀 20석, 콩 5석, 명주 30필, 면포 10필, 밀가루 10말, 대구 2미, 벌꿀 한 말, 참기름 한 말을 마차에 실어 담양으로 떠날 준비를 하였다. 정악원은 악사 1명, 전악 2명, 악공 20명, 무동 10명, 기녀 10명, 처용무 5명, 그리고 사악을 관장하고 책임질 색리 1명으로 1등악을 구성하였다.


어명을 받은 승지는 선온할 술을 골랐다. 조선팔도에서 올라온 600여 가지의 명주 중 20여 가지를 선택했다. 단오에 마시는 창포주, 고려시대 여인들이 즐긴 이화주, 후추와 꿀로 빚은 고려의 명주 자주, 첫 수확한 햅쌀로 빚은 신도국, 소나무 마디 송절로 만든 송절주, 백제왕실의 술 소곡주, 물 없이 자란 한 평의 쌀로 딱 한 병을 빚은 동정춘, 약주의 기원 약산춘, 조선 사대부 여인들의 미림주, 오디향 진한 상심주, 산머루로 만든 쌀머루주, 깊은 풍미의 진맥소주, 찹쌀 눈이 동동 떠있는 달콤한 부의주, 백세를 누리는 백하주, 맛이 좋아 삼키기도 아까운 석탄향, 발효주와 증류주를 섞은 한산춘, 소나무 꽃가루로 빚은 송화천로주, 술로 술을 만든 밝은 청감주, 사시사철 벗과 즐기는 사시통음주, 마시면 신선이 되는 유하주, 오랜 시간 정성으로 만든 삼합주, 불로장생과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신선고본주, 이슬처럼 뚝뚝 떨어지는 맑고 붉은 평양의 명주 감홍로, 배와 생강으로 빚은 전라도 명주 이강주, 대나무 진액으로 빚은 죽력고 등 20여 가지 명주 항아리를 마차에 싣고 승지는 항아리 하나를 들었다놨다 고민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마지막 항아리를 싣지 않고 선온을 가득 실은 마차를 몰고 무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담양으로 출발하였다. 호조 장랑이 이끄는 마차들이 승지의 지휘를 받으며 따랐다.


담양 기촌마을 송순의 자택에 장악원 1등사악이 가장 먼저 도착했다. 회방연을 사흘 앞둔 10일이었다. 임금이 송순의 회방연에 1등사악을 보냈다는 소문이 전라도 구석구석까지 퍼졌다. 조선 건국 이래 처음으로 열리는 회방연이 호남에서 베풀어지는 것을 전라도 선비들은 큰 경사로 여겼다. 송순과 친분을 나눈 선비들과 제자들이 몰려들었다.
장악원 악공과 무희들이 예행연습을 하면서 궁중정재가 담양 땅에 울리고 큰 잔치를 앞두고 흥과 신명이 붙은 대나무들이 먼저 춤을 추기 시작했다. 호조의 명을 받은 담양부사는 소 한 마리와 돼지 5마리를 잡아 연회 음식으로 보내왔다. 장악원의 예행연습은 송순의 노비 14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행해졌다. 두 번의 예행연습이 진행되고 담양은 회방연회의 분위기가 익으면서 잔치에 쓸 떡과 전을 부치는 냄새로 아이들이 들썩였다.


송순은 매일 기촌마을에서 왕복 5리나 되는 면앙정까지 다니며 임금이 내리는 궤장과 홍패 맞을 준비를 하였다. 홍패는 60년 전 사마시에 합격하고 받았다. 그러나 선조대왕은 회방연을 기념하여 홍패를 다시 내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조선의 국법에도 없는 처음 있는 일이라 어명으로 이루어졌다. 4대 사화를 치루고 어수선하기 그지없는 조정의 대신들도 송순의 회방연을 반대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의 청렴결백하고 폭넓은 교류를 나눈 인품을 선조대왕도 인정하고 회방연회를 위해 모든 지원을 다하였다.

송순은 14일 새벽에 일어나 목욕재계하고 임금이 내리는 궤장과 선온받을 준비를 하였다. 하늘은 맑고 청명했다. 무등산이 눈앞에 바짝 다가와 있고 호남의 늦가을은 넉넉하고 풍요로웠다. 홍포를 입고 허리에 야자대를 착용하고 물소뿔 서대를 둘렀다. 그리고 흑피화를 신고 복두를 썼다.


기촌마을 자택에서 면앙정까지 길은 전라도의 각 고을에서 회방연을 구경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가득했다. 길 양옆으로 담장을 두른 듯 사람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회방연도 신기한 구경거리였지만 궁중정재를 구경한 사람은 몇몇 관리들을 제외하고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본 사람이 없었다. 궁중의 사악은 전라도 땅에서 처음 열렸다. 평생 보기 힘든 궁중정재를 구경하기 위해 땅끝 해남과 진도, 무안, 영암, 강진, 순천과 옥구, 전주, 정읍에서도 사람들이 며칠씩 걸어와 진기한 구경을 하려고 길 양옆으로 도열했다. 담양 고을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인 날이었다.
장악원 악공들이 풍악을 울리며 맨 앞에서 길을 열고 홍패를 든 자손이 앞장서고 송순은 남여를 타고 갔다. 남여 뒤로는 문하에서 수학한 제자들이 따랐다. 문하생도 거의 늙어 죽고 김성원, 백광훈, 고경명, 임제, 정철 등이 따르고 그를 흠모하는 전라도 선비와 일가친척들이 길게 줄을 서 따랐다. 그 행렬이 끝없이 이어져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생존의 교우는 유일하게 삼정승을 지낸 홍섬이 살아있었다. 그러나 홍섬은 지병으로 회방연에 참석하지 못했다. 문하생 박순은 삼정승을 모두 지내고 홍섬의 뒤를 이어 영의정에 올랐으나 회방연에는 오지 않았다. 담양 사람들이 양 길가에서 송순에게 절을 하며 축하해 주었다.
면앙정에 먼저 도착한 악공들이 송순이 남여에서 내리는 것에 맞춰 여민락을 연주하였다. 백성과 함께 즐기는 연주는 피리꾼 수잡이의 연주가 일품이었다. 낮은 가락으로 시작하여 차츰 가락을 높이는 쇠는가락은 윤기 있고 활기차 생동감과 흥이 넘쳤다.
예향 전라도의 내로라하는 피리꾼들이 궁중 피리꾼 수잡이 악공에게 머리를 숙여 예의를 갖추었다. 손가락처럼 작지만 천지를 휘어잡는 피리소리는 전라도 백성들의 가슴을 댓잎바람처럼 파고들었다.
송순은 제자들의 부축을 받으며 면앙정 계단을 87년의 세월을 밟듯 올랐다. 그리고 면앙정 뜰의 돌계단을 올라 땅에 엎드려 어명을 받았다. 정철, 고경명, 김성원, 임제, 백광훈이 뒤를 따라 돌계단 위에 엎드리고 그의 자손과 일가는 돌계단 아래 뜰에 엎드렸다.


승지가 전교를 읽었다.
 “짐이 친히 회방연을 칭송하는 것이 마땅하나 그러지 못하니 서운함이 크도다. 잔치를 빛내고자 1등악과 꽃, 술, 대구어를 내리노라. 조선의 큰 경사인 경의 회방연을 예를 다하여 행하라.”
송순이 어명을 받고 아뢰었다.
 “성은이 끝이 없어 황송하고 감사합니다. 예를 잘 행하고 사은의 글을 올리겠나이다.”
승지가 교지를 받들어 주었다. 송순은 임금이 계시는 한양을 향해 네 번 절하고 교지를 받았다.
다음은 이조 정랑이 회방연 홍패를 전달하였다. 송순은 다시 사배하고 홍패를 받았다. 내관이 비단으로 만든 꽃을 전달하였다. 다음은 예조의 관리가 궤장을 전달했다. 궤는 몸을 의지하고 장은 힘을 보조하는 것이므로 송순은 임금의 자상함에 탄복하였다. 또한 지팡이 끝은 비둘기로 장식하였는데 비둘기는 근심 없는 새이므로 근심 없이 노년을 살라는 뜻이었다.
장악원 악사가 박을 쳤다. 송순은 한양을 향해 일어나 네 번 절하였다. 악공들이 느린 호흡으로 절의 속도를 따라 박자를 맞춰 보허자를 연주하였다. 송순은 허공을 걷듯 인간의 경지를 넘은 사람처럼 신선이 절하듯 하였다. 악공들은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태평성대의 즐거움을 담아 합주했다.

 

면앙정 마루에 궤가 놓이고 송순은 장을 짚고 앉았다. 제자들이 먼저 차례차례 절하며 스승에게 공경의 예를 다하였다. 1등악은 궁중의 정제로 대금독주를 시작하였다. 대금소리가 높게 울려 무등산에 메아리쳐 다시 담양 땅으로 날아드는 가운데 일가친척들이 절하고 다음으로 전라도의 선비들이 찾아와 절을 하였다.
대금독주자의 청성자진한잎은 높은 음의 순간적인 청울림이 평온한 선율과 대비되어 힘 있는 소리로 우아한 청량감을 빚어냈다. 평화로운 면앙정의 즐거움을 노래했다.
전라도관찰사 송인수가 전주에서 찾아와 송순에게 절하고 만수무강을 빌었다. 담양부사, 광주목사, 나주목사, 순천부사, 옥구현감이 차례로 인사를 드렸다. 100여 명이 넘는 관리들이 일일이 예를 차렸다.
1등악은 현악합주로 도드리를 연주하였다. 돌고 돌아가는 도드리는 깊은 멋과 흥을 자아냈다. 가야금의 웃도드리와 거문고의 밑도드리가 짝을 이뤄 높고 낮은 음을 달리는 현악합주는 담양 사람들을 살랑살랑 대나무처럼 춤추게 하였다.
다음은 담양 사람들의 절이 한나절이나 이어졌다. 악공들은 궁중의 정재를 끊임없이 연주하였다. 사람들이 절을 할 때 자진한잎 수룡음이 울려퍼졌다. 물에서 용이 노니는 것처럼 송순이 절받는 동안 생황의 깊고 부드러운 음색이 다른 악기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었다.


절이 끝나자 승지가 임금을 대리하여 사온 술을 송순에게 따랐다. 엄선해 온 사온주 중 신선고본주였다. 십여 가지의 진귀한 한약재와 찹쌀로 빚어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늙은 사람이 마시면 젊은 사람처럼 얼굴이 회춘한다는 명주였다. 송순이 첫잔을 받고 제자들은 김성원, 고경명, 정철, 백광훈, 임제가 나이순으로 술잔을 받아 임금이 내린 술을 시음하였다.
궁중정재가 술맛을 돋웠다. 관리들도 임금이 내린 술은 처음인지라 서로 앞다투어 송순 앞에 줄을 섰다. 손수 사온주를 관리들에게 한 잔씩 따라주었다.
1등악은 남창과 여창이 등장하여 태평가를 불렀다. 남창의 묵직한 깊은 목소리와 여창의 맑고 고운 선율이 사온주의 풍미를 더했다. 회방연은 태평가로 즐거움을 더했다.
승지는 커다란 항아리의 신선고본주가 바닥나자 소나무 마디로 빚은 송절주 항아리를 가져왔다. 한양의 명주로 향이 진하고 하체를 든든하게 하는 명주였다. 송절주라는 소리를 듣고 너도나도 잔을 들고 술을 청하였다. 진하고 독한 술이라 선비들은 취기가 빠르게 올랐다.


악사가 등채를 머리 위로 올려 징을 울리며 외쳤다.
 -명금일화 대취타 하라!
악사의 호령에 징이 크게 울리고 연주가 시작되었다. 징, 자바라, 장구, 용고가 연주되며 힘찬 태평소 소리가 울리고 나발과 나각을 씩씩하게 불었다. 취기가 오른 선비들은 대취타 연주에 맞춰 일어나 어께 춤을 추기도 하였다. 송순도 어깨를 들썩이며 흥을 탔다.

태평소가 우렁찬 소리를 내며 취타 연주가 이어졌다. 향피리, 대금, 해금, 거문고, 가야금, 북, 장구, 아쟁, 당적이 흥겨운 연주를 뿜어냈다. 제자들이 송순을 얼싸안고 덩싱덩실 춤을 쳤다. 면앙정에 모인 담양 사람들은 좀처럼 보기 힘든 양반들의 춤을 보고 웃고 떠들며 좋아라 하였다.
한낮이 되어 송순 앞에는 회방연 큰상차림이 차려졌다. 상 앞자리는 밀감을 산더미처럼 쌓아 올리고 과일과 한과, 떡, 약과를 높이 쌓아올려 색을 맞추고 온면과 탕, 찜, 전유어, 편육, 산적, 회, 겨자채, 잡채, 구절판, 신선로, 육회, 떡갈비로 산해진미를 차렸다.
손님들 앞에는 각자 한 상씩 면상이 차려졌다. 국수와 편육, 간장, 초고추장, 조기구이, 떡갈비, 육전, 잡채, 떡, 한과, 과일, 배추김치, 물김치, 화채를 올렸다.
잔칫상이 차려지고 본격적으로 회방연이 시작되었다. 제자들부터 장수를 기원하며 차례로 술잔을 올렸다. 헌수가 시작되고 궁중정재도 시작하였다. 5명의 무원이 오방색 옷을 입고 가면을 쓰고 등장하였다.


악사가 외쳤다.
-송 대감의 회방연을 맞이하여 면앙정의 악귀를 쫓아내고 정갈한 땅을 만들고자 궁중나례 처용무를 시작하겠소!
처용무는 동쪽에 청색 옷, 남쪽에 홍색 옷, 중앙에 황색 옷, 북쪽에 흑색 옷, 서쪽에 백색 옷을 입고 오방을 맞춰 처용가면을 쓰고 춤을 췄다. 두 팔을 허리에 붙이고 청, 홍, 황, 흑, 백이 차례로 북향하고 서서 처용가 가락에 맞춰 처용 5인이 허리를 굽히고 마주서서 춤을 추다 소매를 들어올리고 도돔춤을 추며 발을 올려 무릎을 굽히고 발바딧춤을 추며 오방무원이 중앙을 등지고 추다 제자리로 돌아오고 뒤로 물러섬을 반복하다 처용 5인이 가지런히 북향하여 서면 처용가를 노래했다. 남자 무동들의 장엄하고 신비스런 춤은 잡귀들이 감히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처용무가 끝나고 송순은 장악원 악공과 무희들을 극진히 대접하였다. 모두에게 베 한 필씩 선물하였다. 교자상을 차려 잔치음식을 맛보도록 하였다. 악공과 무희들은 한 해 전에 장악원정을 지낸 정철 앞에서 예의를 갖추었다. 담양의 교자상은 전라도의 풍부함을 그대로 내 보였다. 지리산과 무등산의 산나물과 산짐승 고기와 넓은 들판의 온갖 곡식 그리고 드넓은 갯벌의 해산물과 남해와 서해의 물고기로 차린 한상차림은 수랏상에 버금갔다. 조선 제일의 곡창지대 전라도 땅의 축복이 밥상에 그대로 드러났다. 대통술과 댓잎술이 반주로 올라왔다. 궁중에서 팔도진미는 다 맛보았을 장악원 사람들도 담양의 떡갈비 앞에서는 노래하듯 감탄사를 내뱉었다.


송순은 귀한 제주도 밀감이 잔칫상마다 가득 올라오는 것이 궁금하여 물었다.
-밀감은 어디서 구해 왔는가?
정철이 답하였다.
-백호 임제 이 사람이 제주도에서 스승님의 회방연을 위해 직접 실어왔습니다.
-뱃길이 험하고 무서운데 무사히 바다를 건넜구나. 백호는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었는고?
-스승님 서른입니다.
-두 해 전에 과거에 급제했었지?
-예 스승님 하지만 정치에는 별로 뜻이 없습니다.
-평양감사도 저 하기 싫으면 그만이지.
-그래도 평양은 꼭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술기운이 오른 임제는 나이가 세 곱절이 많은 노스승 앞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무슨 연유로 평양에 가고자 하는가?
-황진이를 사모하여 술이나 한 잔 권하려 합니다.
-백호 이 사람아 황진이는 이미 열두 해 전에 죽었네.
-스승님 산 자와 죽은 자의 선이 어디 있답니까? 황진이 만한 시객이 조선팔도에 있겠습니까? 술 한 잔 꼭 올리고 싶습니다.


-백호 호탕함은 좋으나 황진이 무덤에 술을 따르다 부임길에 파직을 당할 수도 있으니 기생을 멀리는 하는 것이 좋을 것이야.
-스승님 미문보다 한 수 높은 것이 명문입니다. 명문은 궁색한 처지에서 나오는데 그런 문장가를 알아주지 않는 미천한 나라에서 죽은들 뭐가 슬프겠습니까?
-사해제국이라 한탄하지 말고 스스로 좋은 나라를 만드는 문장가가 되는 것도 좋은 일 아니겠는가?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산야를 방랑하며 맑은 바람을 읊고 달빛을 노래하며 살고자 합니다. 스승님 너무 나무라지 마소서.
-어허! 제주도에서 밀감은 어떻게 실어왔나? 많은 배들이 풍랑을 만나 난파되었다는데?
-제주목사 선친을 둔 덕에 향해술을 익혔습니다. 제주를 출발하기 전에 바람이 이는 것을 알아차리고 배 밑창에 돌을 가득 실었습니다. 뱃사람들이 미친놈이라 놀렸지만 그 덕에 풍랑이 일어도 저희 배는 끄떡없었습니다.
술자리가 익어가면서 면앙정 선비들 웃음소리가 커졌다. 밥상은 주안상으로 교체되고 육포와 대구포, 전유어, 대나무숯불구이가 올라오고 임금이 내린 후추와 꿀로 빚은 자주가 주안상마다 한 병씩 올랐다. 또한 주안상에는 임금이 내린 비단꽃 화병이 장식되었다. 사온주 잔이 돌며 선비들 얼굴이 술빛으로 익어갔다. 송순도 취기가 올라 웃음이 많아졌다.


궁중정재가 다시 시작되었다. 두 명의 무희가 나와 입춤으로 1등악 춤공연을 알렸다. 부용관을 쓰고 흰색에 흑색 띠를 두른 중단의를 입고 나와 창사가 없이 보허자령의 반주에 맞춰 무희들이 송순을 보고서서 흐드러지게 양팔을 이마에 대고 내리길 반복하며 춤을 췄다. 눈을 홀리는 발디딤과 손놀림으로 회방연을 빛내고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춤사위를 펼쳤다.
까치걸음, 잉어걸이, 완자걸이로 저벅저벅 거닐다 뱅글 돌아 멈추고 손을 놀렸다. 여미는사위, 평사위, 어르는사위, 얹는사위, 낙엽사위가 바람에 댓잎이 살랑이듯 이어졌다. 발디딤은 대밭에서 죽순이 돋는 것 같고 꿩이 사뿐사뿐 뛰는 것 같았다. 손놀림은 대숲에 나비가 앉으며 팔랑이는 댓잎의 파르르함 같았다.
조선 제일의 애주가 정철이 도포 소매에서 은잔을 꺼내들고 선비들 술상을 돌아다녔다. 은잔은 그의 과음을 걱정한 선조임금이 내린 술잔이었다. 은잔으로 하루에 한 잔만 마시라는 어명을 어길 수 없어 은잔을 두들겨 사발 만하게 크게 늘려 사용하였다.


김성원이 정철에게 물었다.
-송강! 진도군수 이수의 미옥사건으로 인해 동인의 탄핵으로 두 번째 낙향하였으니 술이나 맘껏 드시게나.
-서인 거두들 윤두수, 윤근수, 윤현이 인척인 이수가 보낸 쌀을 받았다고 동인들의 탄핵으로 파직까지 당한 것은 부당하지 아니합니까? 내가 동인의 백정 아닙니까 내가 술을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정철은 비뚤어지고 찌그러진 커다란 은잔을 김성원에게 내밀었다. 술을 따르는 그를 보고 말했다.
-어려서는 김윤제 스승님이 나를 먹여 살리고 지금은 서하당이 나를 먹여 살리니 우리 인연이 특별하지 않습니까?
-송강! 여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인척들일세. 담양 선비의 인맥도를 한번 헤아려 보겠는가!
김성원이 일일이 나열하였다.
-나는 김윤제의 조카이고 송강은 외손녀사위이므로 송강과 나는 처외재당숙지간 아닌가?


김윤제는 소쇄처사 양산보의 처남이며. 양산보와 김윤제의 여동생 김인덕의 아들 양자징은 김인후의 수제자이며 김성원의 사위이다. 양산보는 송순의 고종사촌동생이므로 양산보의 어머니가 송순의 고모이다. 그리므로 김성원과 정철의 두 스승 김윤제와 송순은 사돈지간이었다.
궁중정재는 칼춤으로 이어졌다. 무사복인 전립을 쓰고 전복을 입고 붉은색 가슴 띠를 두르고 칼을 들고 도드리연주에 맞춰 춤을 췄다. 처음에는 손바닥을 이리저리 뒤지고 제치며 놀다 쌍칼을 들었다. 숙은사위에서 옆으로 돌고 입춤에서 머리 위로 오른손으로 칼을 돌리고 가슴에서 왼손으로 칼을 흔들다 연풍대로 이어지며 허리를 앞으로 굽히고 뒤로 제치며 빙빙 돌고 팔을 폈다 당기며 칼을 능수능란하게 놀렸다. 검술에 능한 고경명도 감탄을 자아냈다.


고경명은 하인을 불러 뭔가를 자주 물었다. 하인은 서너 번이나 들락거리며 자초지정을 아뢰었다. 초조하게 누군가를 기다렸다. 정철은 여기저기 선비들 주안상을 기웃거리며 은잔 가득 술을 받았다. 즐거운 날이라 송순도 그의 술버릇을 알았지만 말리지 않았다. 제자들도 모두 시인가객들이라 음주가무에는 능하고 즐겼다.
정읍현감이 늦게 오며 정읍의 명주 죽력고를 가득 가져왔다. 술의 극존칭이라는 기름 고자가 붙어 죽력고가 대나무진액의 농축액 명주라는 것을 이름으로 말했다. 죽력고에 어울리는 안주는 떡갈비가 최고였다. 애주가인 송순은 죽력고를 보고 떡갈비를 만들라고 외쳤다. 정읍현감이 송순에게 술을 따르고 선비와 각 고을 관리들에게 술을 따랐다.


백광훈이 나섰다.
-죽력고는 담양 죽력고도 최고입니다.
-우리 정읍 죽력고는 조선의 3대 명주인 전주의 이강주, 평양의 감홍주, 정읍의 죽력고 중에서도 으뜸입니다.
전라도관찰사 겸 전주부윤인 송인수가 입을 열었다.
-우리 전주의 이강주는 배의 청량감과 생강의 매콤함, 계피의 강한 향, 벌꿀의 은은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울금의 담황색을 따를 술이 없지요!
각 고을의 관리들은 술이 오르자 자기 고을 자랑하기에 바빴다.
고경명은 다시 하인을 불러 재촉하였다. 하인이 면앙정을 뛰어나갔다. 송순이 고경명에게 연유를 물었다. 하지만 그는 대답을 미루었다.

궁중정재는 향발무로 넘어갔다. 네 명의 기녀가 등장하였다. 화관을 쓰고 청색치마에 녹색 저고리를 입고 황색 단의에 붉은 색 띠를 두르고 오채 한삼을 쥐고 나왔다. 홍학이 넘실넘실 걸어 다니며 춤을 추듯했다. 한삼 속에서 은은하게 울리는 놋쇠로 만든 향발이 호랑이가 대숲을 걷듯 싹싹 울렸다. 흥겨운 장단이 회방연의 즐거움을 더하였다.


고경명의 하인이 달려오며 고하였다.
-나리! 방금 영산강 포구에 배가 당도하였습니다.
-그래 어서 하인들을 대동하고 지게로 져 오라!
송순이 물었다.
-제봉 누가 오는가?
-스승님 무안현감에게 부탁한 것입니다.
-무안현감이 담양까지 배를 타고 왔단 말인가?
-네 스승님 밀물 때를 맞춰 영산강을 올라오느라 늦은 거 같습니다. 나루터에 도착하였으니 귀한 것을 가져올 것입니다.
임제가 덩실거리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스승님 저는 제주도에서부터 죽을 고비를 넘기며 남해를 건너 영산강을 따라 담양까지 밀감 100상자를 실어왔습니다.
무안현감이 앞장서고 하인들이 지게에 큰 항아리를 하나씩 지고 면앙정으로 올라왔다. 항아리에서는 산낙지와 숭어, 농어가 펄떡였다. 무안에서 잡은 물고기가 담양까지 싱싱하게 살아왔다.
고경명이 신이나 입을 열었다.
-팔딱팔딱한 싱싱한 회가 도착했으니 이제 담양의 명주 한 잔씩 나눕시다.


또 다른 하인들이 술항아리를 지게에 지고 왔다. 추성마을에서 가져온 담양의 명주 추성주였다. 10여 가지의 한약재로 빚은 추성주는 맑고 깨끗하여 향과 맛, 색이 완벽했다. 애주가 송순과 정철이 특히 사랑한 명주였다. 고경명은 스승의 술 취향을 알고 영산강 뱃길을 이용하여 회의 최고봉 산낙지와 고소한 숭어, 담백한 농어를 항아리에 살려 왔다. 추성주에 어울리는 안주는 생선회뿐이었다. 무안군수가 한 가마니 싣고 온 삭힌 흑산도 홍어와 담양의 묵은 배추김치 그리고 막걸리가 잔칫상에 오르자 선비들이 감탄하며 삼합의 알싸한 맛을 즐겼다.
승지가 손으로 입가의 초장을 닦으며 나섰다.
-한양에서 사온주로 추성주를 선택하지 않은 것은 담양이 추성주의 본고장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고경명이 소리 질렀다.
-이제부터는 신평 선생님의 87회 생일 잔치를 추성주와 생선회로 축하합시다.
추성주에 신난 사람은 송강이었다. 정철만큼 추성주를 즐기는 사람도 드물었다. 송순과 송강은 추성주 애주가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운 스승과 제자였다. 삼당시인 백광훈도 추성주와 시를 아는 가객이었다. 호걸 고경명은 추성주를 항아리로 마셨다. 김성원도 회와 추성주의 맛을 아는지라 회를 썰기가 무섭게 동이 났다. 추성주에 회방연잔치가 무르익었다.


궁중정재는 북춤으로 연결되었다. 흰 한삼에 붉은 소매의 기녀옷이 아름다웠다. 둥그렇게 휘어지며 북을 치는 기녀가 씩씩하고 호방하고 기운찼다. 까치발로 디디며 독수리처럼 양팔을 벌리고 북채를 두드렸다.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까치발로 들고나고 돌고 되돌고 두드리는 북소리에 잔치는 시끌벅적해졌다.
삼당시인도 부족해 팔선시인 이름까지 얻은 백광훈은 명나라 사신도 시와 글로 탄복케 한 절창의 시인이었다. 백광훈이 즉석으로 시를 지어 송순에게 바쳤다.
 
 무등산 자락에 노송이 푸르르네
 면앙정 대숲에 신선이 노니는데
 바람과 구름이 술향에 취해 떠날 줄을 모르네.
 
무안현감이 연거푸 추성주를 마시고 송순에게 떼를 썼다.
-신평 선생님 저도 사온주 맛을 보고 싶습니다.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가 임금이 내린 술맛도 모른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송순은 사시통음주를 사시사철 벗들과 즐기라며 선물로 내주었다. 기분이 들뜬 무안현감이 약간 취하여 다시 입을 열었다.
-배를 타고 영산강을 거슬러 오르는데 함평천지를 지날 때 강가에서 선비들이 나를 부르더이다. 배를 강가에 대니 함평 이발 대감댁 사람들이 한우를 한 마리 잡아 육회를 쳤다고 다섯 대바구니를 배에 실어주며 송순 대감 회방연 선물로 갖다 드리라 합디다.
백광훈이 화를 내며 나섰다.
-함평 이발 대감하면 동인을 대표하는 인물 아니오?
-맞습니다. 육회 친 소고기를 실어주면서 이렇게 전하라고 신신당부했지요. 소고기 썰며 “정철, 정철”하며 썰었다고 말입니다.


정철이 박장대소하며 답했다.
-동인들이 내가 무섭기는 무서운 모양입니다. 동인 백정, 간철, 악철, 흉철, 독철로 부르는 것도 모자라 고기를 난도질하며 내 이름을 부른다니 그들이 하고 싶은 짓은 다하라고 해야지요. 이발도 한때는 나의 문하생이었으니 나와 이이가 잘못 가르친 탓입니다.
임제가 물었다.
-그래서 이이 율곡 선생이 서인과 동인을 화해시키려고 중간에서 애를 쓰시는군요.
-이이는 나의 절친한 벗이고 이발은 이이의 제자이기도 했으니 나라를 위해 서인과 동인의 화해를 주선하는 것입니다.
무안군수가 다시 말을 이었다.
-영산포에서는 영의정 박순 대감의 나주 본가에서 민물장어 100마리를 항아리에 담아 실어주며 송 대감의 회방연 선물이라 하셨습니다.


송순이 고개를 끄덕이며 고마움을 전하라 일렀다. 주안상은 다시 다과상으로 교체되었다. 다과상도 비단꽃이 장식돼 이발 대감댁에서 보낸 육회가 올라오고 박순 대감댁의 장어구이가 오르고 유과가 오르고 장흥현감이 보낸 유자차와 보성현감이 보낸 녹차, 순천부사가 보낸 사과가 차려졌다.
궁중정재는 포구락으로 이어졌다. 열 명의 기녀가 모두 나와 양편으로 다섯 명씩 나누어 선녀가 내려온 듯 춤을 추며 포구문의 풍류안에 용의 알 채구를 던져 넣은 놀이였다. 회방연에 가장 어울리는 춤과 놀이였다.


고경명이 제안하였다.
-우리 담양 선비와 전라도관찰사를 비롯한 각 고을 관리들 편으로 나누어 내기를 합시다.
전라도관찰사 송인수가 나섰다.
-어떤 내기를 하시겠습니까?
-장악원의 1등악공과 무희들이 담양까지 스승님의 회방연을 빛내기 위해 어명을 받고 왔으니 보답을 해야지요. 우리는 스승과 제자 다섯이니 지는 편이 은600냥을 내기로 합시다.
전라도관찰사가 내기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정철과 임제, 백광훈은 입을 다물고 말이 없었다. 송순이 허락하면서 포구락 경기가 시작되었다. 양편의 선비들은 각 편의 기녀들을 응원하였다. 악공들도 신명이나 연주가 절정을 이루었다. 관찰사편은 모두 흥겹게 포구락을 즐겼다. 다만 정철과 임제, 백광훈은 그러지 못했다.


은100냥이 그들에게 있을 리 없었다. 포구락을 펼치는 동안 송순은 하인들을 시켜 세 사람에게 은100냥 꾸러미를 은밀히 전달하였다. 돈을 받아든 세 사람은 비로소 목청껏 기녀들을 응원하였다. 선비는 체면으로 사는 것이라 송순의 배려가 이루어졌다. 정치에 뜻이 없는 시인가객들은 가난하기 마련이었다.
포구락은 담양선비편 기녀들이 승리하였다. 관찰사와 각 고을 관리들이 은 600냥을 모아 내놓았다. 송순이 200냥을 내놓고 김성원이 100냥 고경명이 100냥을 내놓아 은 1000냥을 장악원 악공과 무희들을 대표하는 악사에게 1등악 노고비로 전달하였다. 세 사람도 은100냥씩을 내놓으려 하였으나 송순의 만류로 그만두었다. 돈주머니가 생긴 세 사람은 생기가 돌았다.


악공과 무희들이 반도춤을 추며 회방연은 절정에 이르렀다. 기녀 10명이 수명장수를 빌며 삼천년에 한번 열리는 장수의 상징 인선도 복숭아를 송순에게 올렸다. 궁중정재는 헌선도에 이어 곧바로 배따리기공연을 펼쳤다. 장악원 악사가 화려하게 치장한 배모형을 끌고와 면앙정 뜰에 놓았다. 모든 무희들이 배를 둘러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선비들도 무희들 사이사이로 앉았다. 악공들의 연주에 무희들이 어부사시사 노래를 했다. 남색의 군복을 입은 어린 기녀 둘이 나와 호방하게 춤을 췄다.


송순이 술에 취해 가야금을 들었다. 장악원 악사가 장구를 들고 나와 반주를 맞췄다. 그는 남도가락 가야금 산조를 탔다. 술에 취해 흥에 취해 가야금을 튕기고, 뜯고, 흔드는 연주가 신들린 듯하였다. 다섯 제자가 일어나 학춤을 추기 시작했다. 서로 싸우는 듯 겨루며 날개를 펴 날아오르고 사랑을 나누듯 날개를 비비며 뛰어올라 면앙정을 훨훨 날았다. 송순은 가야금 산조 남도가락을 진양조, 중모리, 주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단모리 장단을 쉬지 않고 몰아쳤다. 규칙 없는 남도가락에 제자들도 자유분방하게 춤을 췄다. 학춤을 추는 선비는 신선이오. 구경하는 담양사람들도 신선이었다. 송순의 남도가락 산조는 아름답고 결렬하게 하늘을 날고 때로는 고요하게 호수에 내려앉는 학의 선율로 이어졌다.
폭풍처럼 몰아친 흥이 가라앉으며 회방연이 끝이 났다. 송순이 기촌마을 저택으로 돌아가고자 일어서며 술에 취해 비틀거렸다.


정철이 흥에 들떠 외쳤다.
-우리가 신평 선생의 남여를 메고 집까지 모십시다.
각 고을 선비들이 전례 없는 일이라 고개를 저었다. 양반이 가마를 메는 일은 없었고 임금도 양반이 메는 가마를 탄 적이 없다고 했다. 정철과 임제가 호탕하게 앞으로 나서며 남여의 채를 잡았다. 고경명이 따라나서며 남여 뒤채를 잡았다. 김성원이 백광훈에게 마지막 한 자리를 양보하였다.
백광훈이 김성원의 등을 밀려 말했다.
-식영정의 4선이 메야지요? 성산 식영정의 4선 중 임억령이 사망하고 없으므로 그 자리는 임제가 대신하였으므로 나머지 자리는 서하가 서는 것이 이치입니다.

 

백광훈의 설명에 남여를 메는 사람은 정철, 임제, 고경명, 김성원으로 결정되었다. 면앙정에서 기촌 송순의 자택은 3리나 되었다. 성산 4선은 남여를 잡고 어깨에 광목띠를 둘렀다. 집으로 돌아가는 행차의 맨 앞은 무동 10명이 홍청황흑백으로 쌍쌍이 옷을 입고 춤을 추며 길을 열었다. 장악원 악공들이 무희의 뒤를 따르며 궁중정재를 연주하였다. 그 뒤는 김성원의 조카이며 김윤제의 나이어린 문하생이었던 김덕령과 그의 형 김덕홍이 쌍홍패를 들고 나란히 걸었다. 쌍홍패는 송순의 60년 전 과거급제 홍패와 회방연 홍패였다. 남여 뒤는 일가친척과 전라도관찰사와 각 고을 수령들이 뒤를 따랐다. 담양 고을의 모든 사람들이 나와 환영하였다. 사람들이 대나무숲처럼 길 양옆을 가득 빽빽하게 메웠다.


집까지 환송하고 떠나는 각 고을 수령들에게 송순은 사온주를 나누어 선물로 들려보냈다. 무안현감에게는 나주의 박순 영의정 댁에 보내는 사온주와 함평의 이발 대감 댁에도 사온주를 실어보내 예를 다하였다. 동인과 서인의 당쟁이 높았지만 예의는 서로 다하였다.

승지와 각부의 관리들도 떠날 채비를 했다. 승지에게는 흑단령을 선물하고 회방연을 베풀어준 임금에게 사은의 글을 써 올렸다. 관리들에게는 비단을 선물하였다. 송순 집에는 장악원 악공들과 제자들 그리고 담양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밤에는 횃불을 밝히고 집안의 부녀자들과 140여 명의 노비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불러들여 장악원의 궁중정재악을 공연하였다. 부녀자들을 위해 사온주로 임금이 보내 창포주와 아녀자들이 즐기는 이화주 항아리를 열어 즐기도록 하였다. 그리고 갖은 음식과 고기도 나누어 먹도록 하였다.


다음날은 조상의 산소를 찾아 궁중정재를 펼치고 음식을 차려 회방연의 고유제를 지냈다. 제자들과 일가친척들이 함께 하였다.
다음날부터 담양의 모든 양반집을 찾아다니며 궁중악을 연주하고 사온주와 잔치음식을 일일이 전달하는데 닷새가 걸렸다. 그리고 20일부터는 300여 호의 기촌마을 인근 집들은 양반상놈을 가리지 않고 장악원 악공들이 궁중정재를 하며 앞장서고 각 집마다 고기와 떡, 잔치음식 그리고 대통술로 차린 찬상을 하나씩 돌렸다.


29일에는 부인의 묘소를 찾아가 궁중정재를 펼치고 삼회를 이루지 못한 것을 아쉬하며 눈물을 흘렸다. 회갑, 회방은 이루었으나 사람으로 누릴 최고의 행복 삼회 중 결혼 60주년의 회근을 치르지 못한 아쉬움을 송순의 나이 61세에 사망한 부인에게 고하였다.
장악원 악사와 악공들은 11월 30일에 모두 한양으로 돌아갔다. 송순은 마지막 날은 담양의 떡갈비와 추성주로 장악원 악공과 무희들을 위로하고 충분한 여비와 진귀한 선물을 하였다. 장악원 1등악이 한양으로 돌아가자 비로소 11월 1일 선조대왕의 전교로 시작된 회방연이 한 달 만에 끝이 났다.
송순은 마지막까지 집에 남아 회방연을 마무리해준 제자들을 모아놓고 마음을 털어놓았다.
-내 비록 자식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 자식 교육은 못하였으나 청출어람한 제자들을 길러낸 것이 가장 큰 덕이다.
김성원, 고경명, 정철, 백광훈, 임제가 큰절을 올렸다.

 

 

 

 

 

 

 

  ▲송주성 소설가

 

  [약력]

□ 송주성 소설가

□ 2014년 단편소설 <금샘>으로 제1회 금샘문학상 대상 수상, 소설가로 작품활동 시작.

□ 2018년 제6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

□ 2019년 제1회 무예소설문학상 최우수상.

□ 저서  장편소설 『직지 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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